총,균,쇠 그리고 치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적인 책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가 쓴 '총,균,쇠(guns, germs, and steel)이다. 왜 지역마다 문명발달의 차이가 생겨나는지. 그래서 심지어 백여명이 조금 넘는 스페인군대가 수만명의 넘는 군대를 보유한 잉카제국을 무너뜨리고 대륙 전체를 차지해버리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근원적이고 설득력있는 해답을 제시해준다.
이론은 매우 간단하다(진화론이나 상대성이론과 같이 대부분의 훌륭한 이론이 그렇듯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게 했던 요소인 병원균, 쇠, 문자, 정치조직, 기술(선박, 무기) 등의 차이는 결국 누가 먼저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업 목축으로 전환했느냐에 따라 초래된 결과라는 것이다. 농업, 목축에 따른 생산성의 증가가 인구증가를 초래하고 먹거리 생산을 직접안해도 되는 사람들(추장, 사제, 관료, 기술자 등등)의 존재를 가능하게 되어 문명의 발달을 초래하게 된다(태어나서 한번도 내가 먹는 것을 직접 생산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백퍼센트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렇다면 어떤 집단이 농업목축으로 전환하고 어떤 집단은 수렵채집 생활로 남아 있느냐인데 이것은 인종의 우수성과는 전혀 관련없이 주위에 작물화하기 좋은 야생식물이나 가축화하기 좋은 야생동물이 존재했느냐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즉 문명의 발생지가 4대강 유역인 이유는 우연히 그곳의 환경조건이 농업목축에 유리했기 때문인 것이다. 게다가 유라시아 대륙은 횡으로 매우 길기 때문에(기후조건이 비슷한 같은 위도 지역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한쪽에서 시작된 농업, 목축(그리고 그에 따른 문명이) 전파되기 쉬운 조건을 가진 반면에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지역을 종으로 길기 때문에 농업 전파에 많은 제약이 있었던 것이다.
왜 스페인 사람으로 대표되는 구대륙 사람들에게는 천연두, 홍역, 결핵, 인플루엔자 등 지독한 전염병들이 있었던 반면에 신대륙의 인디언들에게는 이런 전염병이(따라서 이런 전염병에 대한 항체가) 없었던 것일까? 저자는 천연두, 홍역, 결핵은 원래 소의 전염병 인플루엔자는 돼지나 오리의 전염병인데 가축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전달된 후 인간과 공진화를 거쳐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축화가 제한되어 있고 인구가 조밀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이런 전염병이 존속하기 어렵고 그 결과로 수천만명이 넘는 원주민이 살던 남북아메리카 대륙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서운 전염병을 지닌 유럽인들에게 속절없이 땅을 내주고 만 것이다.
그런데 유라시아 대륙에 있는 여러 지역 중에 하필 유럽이(중국이 아니고)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을까? 저자의 설명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중국은 오래전부터 중앙집권화된 통일국가가 가능했고 유럽은 적당히 분열되었는데 이러한 분열상태(최적분열이라나)가 상호간 경쟁을 통해 문명 발달을 가속화시켰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 책은 최근에 나온 것은 아니고 여러해 전에 번역본이 나왔다. 그때 나도 어디선가 서평을 보고 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작 샀는지, 사려는 의도만 있었는지가 헷갈린다. 최근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과 학교의 서가를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집에서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그럼 사긴 샀다는 얘긴데). 얼마전에 환경운동연합의 임지애국장을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총,균,쇠'가  정말 훌륭한 책이라는 얘기를 한참했더니 예전에도 내가 그런 얘기를 한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예전에 이 책을 샀을뿐만 아니라 어느정도 읽기까지 했다는 얘기인데 이 책을 샀는지 안샀는지는 헷갈려도 이 책을 읽은 기억은 전혀 없다. 옆에 있던 고도현 간사도 내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맞장구를 치는 것을 보니 내가 치매가 오기 시작한 모양이다.
하여간, 임국장도 자신의 읽은 책 중에 '문명의 붕괴'가 아주 좋다면 한번 읽어보라고 강추한다. 나중에 문자를 보내기를 이 책 역시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가 쓴 책이라고 한다. 문명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알았으니 어떻게 붕괴할지도 알아봐야 겠다.

by 카이로스 | 2009/04/25 14:38 | 일반 | 트랙백 | 덧글(3)

석면특별법

오늘 (2009/3/11) 환경보건포럼에서 석면노출실태와 대책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있었다. 최근 충남의 폐광근처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석면폐질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회였는데 결국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느냐 아니면 기존의 환경보건법의 테두리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느냐가 핵심 논점이었다.
석면의 유해성이야 워낙 잘 알려져 있고 노출도 광법위하게 이루어져서 뭔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데는 이론이 없었다. 여당과 야당,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보수및진보 언론 모두가 한목소리로 특별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고 이미 국회에는 3개의 특별법안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종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환경보건법이 1년간의 경과기간을 지나 바로 이달말이면 시행이 된다는 것이다. 환경유해인자의 위해성 평가 및 관리, 환경관련 건강피해의 역학조사, 조사결과에 따른 조치, 그리고 환경성질환의 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환경보건법이 막 시행되는 시점에 석면에 의한 환경성질환이 발생하였는데 법을 시행해보기도 전에 새로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냐는 것이다. 물론 환경보건법에 있는 환경성질환에 대한 배상책임 규정이 오염자의 배상책임 의무를 선언한 수준이어서 석면피해를 구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보완이 필요하긴 하지만 석면의 관리와 건강조사는 환경보건법의 틀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사실 환경보건법을 만들때 가장 염두에 둔 유해요인과 환경성질환이 바로 석면과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이었는데 정작 상황이 발생하니까 법이 무력화되버린 것이다. 석면이 문제가 되면 석면특별법, 비소가 문제가되면 비소특별법을 만들거냐는 볼멘소리도 나왔고, 기왕 환경성질환이 걸리려면 특별법이 만들어질 질환을 잘 골라서 걸려야 하는 거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하지만 엄연히 피해자들이 있고 환경보건 분야를 한단계 진전시킬 동력(?)인 석면문제를 전문가들의 이견 노출로 인해 아무 성과도 없이 무산시킬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참 어려운 문제다.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데 말이다. 

by 카이로스 | 2009/03/09 22:06 | 트랙백 | 덧글(0)

진화의학의 측면에서 보는 임신

 

입덧, 유산, 임신중독증과 같이 임신과정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현상들을 진화의학적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입덧은 방어기전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결함으로 봐야 할지 논란이 많다. 임신초기의 여성들을 너무 쇠약하게 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입덧을 줄이거나 없애려는 의학적 시도들이 있었다. 이러한 시도 중에 가장 비극적인 것을 잘 알려진대로 1950년대에 있었던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라는 약물에 의해 무려 12,000명에 이르는 기형과 유산이 발생한 것이다.

입덧은 뭔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자라나는 태아를 지켜주기 위해 오랜기간 동안 진화해온 방어기전일 수도 있다. 임신초기의 입덧과 음식혐오증은 일차적으로는 호르몬(특히 임신초기에 상승하는 hCG와 에스트라디올)에 의한 것이지만 진화의학적 해석은 잠재적으로 독성이 있는 음식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하는 것이 임신초기 3개월의 태아를 보호하여 임신성공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즉 임신초기에 입덧을 하는 경향은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진화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신초기의 구역질과 구토가 갖는 적응적 가치에는 한계가 있다. 아주 심하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입덧은 탈수와 체중감소로 이어져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입덧이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태아보호가설'은 주로 영양상태가 좋은 산모들은 관찰한 결과에 의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 임신 전부터 영양상태가 안 좋은 산모들은 입덧으로 인해 심한 영양부족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만들어진 수정란의 상당수는 자궁에 착상하지도 못한다. 착상한 것중에 10-20%는 임신 첫 3개월에 유산된다. 임신성공률은 최대화시키는 것이 결국 진화의 승자라면 초기에 유산되는 것은 어떤 이점이 있을까? 초기유산은 특정상황하에서는 분명히 도움이 된다. 자손의 질이 양보다 중요한데 왜냐하면 매 임신, 출산 양육과정에서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자손을 만들어낼 만큼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임신해서 출산 양육하는 것은 에너지의 낭비이기 때문에 차라리 다음 자식(보다 건강해서 이세를 낳을 가능성이 많은)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실제로 첫 3개월 동안 유산되는 임신의 상당수는 염색체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의사들은 유산을 병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곤 한다. 유산이 진화과정의 실수에 대한 해결책인데도 말이다.

태아는 때로 이식된 조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피부이식을 하면 종종 실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라는 이식 조직이 때로 실패하는(유산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특히 태아 조직은 엄마와 평균적으로 유전자의 50%만 공유하는 것을 감안하면).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임신을 부모와 영아의 갈등(엄마의 이해관계와 영아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으로 이해하는 것이 유용하다. 때로는 엄마의 입장에서 자신의 건강 또는 자신의 현재 아이 또는 나중에 생길 아이의 건강을 방해하는 임신을 끝내는 것이 최상의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뱃속의 태아 입장에서는 상황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임신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결론적으로 태아는 유산을 최소화해서 자신의 생존을 최대화하려는 진화적 전략을 발전시켜 왔고 마찬가지로 엄마는 위험이 있는 태아를 발견해서 적절하게 처리하는 전략을 진화시키온 것이다.

임신의 처음 삼개월을 무사히 넘기면 유산의 위험은 현저히 줄어들지만 엄마와 태아의 갈등은 지속되는데 특히 영양분을 두고 경쟁한다. 공중보건학적 관점에서 보면 엄마가 임신 중에 심한 영양부족을 경험하면 태아의 자궁환경도 나빠져서 유산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예상은 자주 빗나가서 기근이나 전쟁과 같이 음식을 거의 섭취 못하는 상황에서도 출산에 성공한다. 이런 현상을 엄마의 건강을 위협하더라도 태아가 임신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출산했다고 해서 자궁 속에서의 영양부족 상태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궁 속에서 성장장애가 있어서 잉태기간에 비해 작게 태어나고 평생동안 건강에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엄마와 태아 사이에 영양분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관계가 임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임신 중 당뇨와 임신중독증(고혈압)이다. 임신 중 당뇨와 중독증은 모두 엄마의 생리적 상태를 태아에게 산소와 영양분의 전달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하다보니 생기는 병이다. 당뇨가 없는 여성은 혈당이 식사 후에 올라갔다가 인슐린이 분비되면 혈당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임신 후반기에는 식사 후에도 당과 인슐린이 높은 상태로 유지되어 태아를 이롭게 한다. 태아가 엄마의 건강을 희생시키는 댓가로 보다 많은 당분을 섭취하는, 즉 태아의 이해관계가 엄마의 이해관계에 상반되게 작용하는 예인 것이다. 엄마에서 혈당이 높게 지속되면 저혈당증을 초래할 수도 있고 태아의 건강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임신 중 당뇨가 생긴 여성이 낳은 아이는 나중에 당뇨병이 생길 위험이 높다. 이것은 임신 중의 영양분 섭취의 적정량이 있고 이보다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임신 중 합병증이 생기고 엄마의 아이 모두 장기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신 중 당뇨가 선진국에서 많이 생긴다면 임신중독증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발생한다. 임신중독증은 산모의 혈압이 높아지는 증상으로 전체 임신의 10% 정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신중독증은 미숙아 출산의 중요한 원인인데 왜냐하면 임신중독증의 치료방법은 태아와 태반을 배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신중독증이 있는 상태로 임신이 계속되면 산모의 신장, 간, 뇌에 손상을 입게 되고 심한 경우 간질이 발생하기도 한다. 게다가 단기적인 영향은 출산과 함께 좋아지지만 엄마의 건강에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들도 있다. 불행히도 임신중독증을 연구할 수 있는 동물모델이 없기 때문에 원인과 치료방법에 대한 연구가 어려운 실정이다. 임신중독증이 호모사피엔스의 뇌가 커지는 쪽으로 진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들이 있다. 점점 커지는 태아의 두뇌발달에 필요한 산소를 적정하게 공급하기 위해 태반이 엄마의 조직 속으로 점점 더 깊게 침투하면서 임신중독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임신중독증은 보통 첫째 임신 때 나타난다. 임신중독증의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진화의학적 권고는 성관계를 가진 후 몇 달 후에 임신을 하도록 하는 것인데 임신중독증이 첫째 임신에 주로 나타나는 질환일 뿐아니라 새로운 정자노출과 관련된 커플의 질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임신을 몇달 늦춤으로서 여성의 면역체계가 남성의 항원에 적응할 기회를 줘서 태아라는 동종이식물을 공격할 확률을 낮춰주는 것이다.

by 카이로스 | 2009/03/08 21:27 | 트랙백 | 덧글(1)

2008년 10대뉴스

해도 바뀐지 오래고 설날이 지난지 여러날 되었지만 내 인생의 어느해보다 다사다난 했던 작년에 대한 간단한 기록을 어딘가에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1월 어느날 집에 오는 버스 속에서 경향신문 김후남기자로부터 칼럼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삶터에서' 매달 한번씩 기고를 하게되었다. 정기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처음 쓴 것은 '비만과 지구온난화' 참신하다는 얘기를 여러사람에게 들었고 대운하반대에 대한 글, 광우병 문제를 사전예방의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글들이 임팩트가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정권의 의도에 반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쓴다는 것이 적잖은 부담이라는 것도 느꼈고 그 뒤로는 아무래도 주제 선택이나 논조에 자기검열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지난달에 쓴글을 보육을 국가에서 해야한다는 나름 중요한 글이었는데 마누라로부터 누구나 다아는 진부한 내용을 썼다고 혹평을 받아서 사기가 많이 저하되기도 했다.'비행장소음의 문제', 좌우대결을 진화론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글들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얼마전에 '삶터에서'라는 지면 자체가 없어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시원섭섭한 일이다.
- 4월 경에 제주에서 열린 아시안환경역학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서울의료원 진료부장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한통 받았다. 서울의료원 아토피 연구소장 직에 대한 제의였는데 서울에 오피스를 갖고 싶다는 오랜 바람이 있었고 과외 소득도 기대할 수 있는 지라  승낙을 하였다. 하면서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환경성질환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토피 피부염을 연착륙시켜서 의학적으로 건전한 방식으로 사회적대응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첫번째 외부직책, 즉 겸직을 하게되었다.
- 5월에 상해에 있는 동생집을 방문하셨던 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머리가 찟어지시고 연이어 심실빈맥이 와서 상해에 있는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여동생과 함께 상해를 갔는데 중환자실에 의식도 없이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누워계시고 multiorgan failure가 온 상태로 앞날을 기약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국의료진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투석을 하던지 그냥 최후를 기다리던지 선택하라고 한다. 이제는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국내로 모시는 방법을 다각도로 알아봤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서 이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의식도 돌아오시고 호흡기도 떼게되어서 일주일만에서 비행기 6자리를 사서 침대 채로 한국으로 모시고 올 수 있었다. 그후로도 여러차례 우여곡절이 있지만 현재 집에서 계실 정도가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기 그지 없다.
- 7월에 부원장님으로부터 내가 보건복지대학원장에 임명될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지나가는 말처럼 들었다. 내게 아무런 사전연락없이 6월에 있는 정기인사에서 보건복지대학원장 복수후보로 추천이 되었는데 일순위자에게 문제가 생겨서 내가 대학원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가족과 함께 연구년을 해외에서 보낼 계획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제의를 받으며 사정을 말하고 거절할 생각이 이었는데 누구도 내게 공식적으로 제의를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보직자는 연구년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심사에서 제외되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얼렁뚱땅 원장 임명장을 받고 말았다. 원장에 임명되고 보니 생각보다 높은 자리이다. 서열로만 따지면 천안캠퍼스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위치인 것이다. 물론 대학원장이라는 것이 원로원 멤버같은 성격이어서 활동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째되었건 엉겁결에 내인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보직을 받게되었다. 올라갈만큼 올라갔으니 남은 인생을 사심없이 살게될까 아니면 더 욕심을내게 될까?
- 7월에 동탄에 복층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2005년에 무려 88대의 일을 뚫고 당청이 된 아파트에 드디어 입주를 하게된 것이다. 당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국제환경역학회에 참석중이어서 호텔방에서 인터넷을 통해 당첨사실을 처음 알았다. 경쟁율이 너무 높았는데 당첨된 것으로 보아서 특별한 은덕(아마도 그해 8월에 작고하신 장인어른의은덕)이 있었던 것 같다. 집은 정말 환상적이다. 쓸데없는 공간처럼 보이는 드넓은 베란다들이 살아보니 삶의 숨통을 틔여주고 바베큐를 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매일 펜션에 온 기분. 특히 얘들이 좋아한다. 매일 친구들 데려오는 것이 일이다. 복도 많지. 하지만 댓가도 적지 않다. 하자 투성이라 아직도 하자보수룰 하고 있고 이번 겨울 내내 추위에 떨었고 12월에는 동파가 되어 집안에 물난리가 나기도 했다. 수리하러 온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하면 그래도 이런집에서 살아봤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하니 더 이상의 불평은 복에 겨워하는 소리일 뿐인 셈이다.
- 7월에 그러고 보니 작년 7월에는 워낙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일단 얘들을 데리고 먼저 미국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던 아내가 인사차 들린 방사선과 선생의 검진 선물을 받는 과정에서 갑상선에 암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워낙 크기가 작아서 1년쯤 있다가 치료해도 괜찮다고 하는데 암인걸 알고 치료를 연기할 수 있는 강심장으로 가진 사람을 아마 없을 것이다. 결국은 수술을 받았다. 수술직후에는 hypocalcemia때문에 마비증상도 오고 목소리도 안나오고 괜찮을 것이라는 집도의의 설명이 있긴 했지만 회복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초한날을 여러날 보내야 했다. 결국 미국 체류계획은 취소되고(보험도도 받고 그 이후에 터진 경제위기를 보면서 전화위복의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졸지에 암투병환자의 남편이 되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조기검진의 문제점을 지적한 '알권리 모를자유'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 12월에 7년동안 타던 싼타페(우람이)가 또 퍼졌다. 몇달 전부터 계속 차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실행을 못하고 있던 터여서 일단 팔아버리기로 했다. 중고차상에 450만원에 팔았다. 팔고난 다음날 주차장에 더이상 우람이가 없는 것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스웨덴에서 지하철 판넬에 있는 광고를 보고 필어 꽂혀서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SUV를 과감하게  구입하였지만 대기오염을 하던 사람이 디젤차를 몰고다닌다고 해서 알게모르게 눈총도 많이 받았다. 언제부터가는 차 크기에 비해 힘이 너무 딸려서 이게 고철덩어리가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여기저기 고장이 나서 수리비로만 수백만원이 든 애물단지 였는데. 그래도 애들의 성장시기 전국 방방곡곡을 함께 누빈에 우리 가족과  한 식구였다(이제는 더 이상 애들이 부모와는 어딜 가려고 하지 않으니 아마 가장 많은 추억을 가진 전설이 될 것 같다). 새차의 선택기준은 작지만 힘이 좋고, 연비가 좋은차로 했는데 가격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독일차들이 대상이 되었다. 그야말고 장고 끝에 연말에 폭스바겐파사트 세일이 있어서 구입을 했다. 힘좋고 연비 좋아서 대만족이지만 스포츠 버전이라 서스펜젼이 딱딱해서  타고나면 울렁우렁하고 아직도 수입차에 대한 시선이 있어서 마음대로 몰고다니기가 편치는 않다. 왜 나는 모든면에서 편안한 소나타가 같은 차를 사지 못하는 걸까?
- 12월에 산업의학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태안 환경보건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정우철이 청첩장을 들고 와서 주례를 서 달라고 한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관계가 관계인지라 나몰라라 하지는 않고 주례를 구해주겠다고 했다. 일번으로는 부원장님에게 부탁을 했더니 차라리 결혼식에서 노래를 부르라면 부를지언정 주례는 못하겠다고 하신다. 다음에 학장님. 역시 펄쩍 뛰신다. 그다음은 정우철과는 전혀 모르지만 주례를 잘 서주시는 원로 교수들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데. 정우철이 다시 한번 직접해주면 안되겠냐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전해 모르는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잘 아는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당시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아버지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그냥 짧게 하라고 하시면서 친구분의 예를 들어주시는데  편찮으신 분이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오늘은 날씨도 춥고하니 주례사를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있던 어머니도 나도 크게 웃었다. 전공의도 없는 내 현실을 생각하면 내가 의미있게 주례를 설수있는 기회도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주례사를 직접 쓰고 딸들 앞에서 예행연습도 하고 시간도 재봤다. 얼추 4분정도(주례사는 블로그에 올렸음). 다행히 큰 실수없이 마무리했고 하고 나니 제법 잘했다는 얘기를 몇군데서 들었다. 같이 간 아내는 신나서 사진찍고 난리가 났다. 끝나고 천안에서 가장 맛있게 하는 집에서 함께 스파게티를 먹었다.

작년에 일어났던 주요한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니 얼추 8개인데 그중 이사말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아마 작년 수준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올해 꼭 하고 싶은 일은 적어보면
- 진화의학에 대한 공부를 해서 기본지식을 갖춘다(마침 예과 생물학 강의에 진화부분을 맡아서 하기로 했으니 기회가 좋기도 하다)
-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운다(집안 공안에 인라인 스케이트장이 있는데 타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3개월 정도 강습을 받으면 그럭저럭 탄다고 한다.) 몸에 딱 달라붓는 옷을 입고 따는 모습이 정말 가슴을 설레게 한다. 스킨스쿠버를 같이 하자는 사람도 있고 아내와 춤도 춰야 하지만 우선 순위는 인라인스케이트이다.

by 카이로스 | 2009/02/09 21:44 | 일반 | 트랙백 | 덧글(2)

한국형 뉴딜

요즘 경제가 매우 어렵다. '이웃이 직장을 잃으면 불황이고 내가 직장을 잃으면 공황'이라는 데 올해 우리 경제는 불황과 공황 사이에 어디쯤 위치하게 될 것이다. 경기침체 때는 빚을 내서라도 정부지출을 늘려서 실업자를 구제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조치들을 취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1930년대 대공황 때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한 뉴딜(New Deal)정책일 것이다. 뉴딜정책을 대규모 토목공사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상은 경제운용 방식 내지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담고 있다. 즉 공황을 초래한 기존의 자유방임적 경제제도를 포기하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경제 시스템을 개혁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하는 등 국민의 생활을 직접 보살피겠다는 의지가 정책으로 표현된 것이다.

새로 출범하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도 신(新) 뉴딜 정책을 발표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노후한 사회기반시설과 공공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획기적인 교육환경개선 사업, 초고속인터넷망 확충 등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미국의 차기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그래서 한국형 뉴딜에서 꼭 담아할 내용은 무엇일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적자재정을 편성하여 대규모 사업을 했을 때 그 빚을 갚아 줄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핵심근로계층(25-49세)의 숫자는 2007년 2100만명을 정점으로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다. 잘 아는 것처럼 낮은 출산률이 원인이다. 1970년 한해 100만명이 출생하던 것이 2005년에는 44만명으로 반토막이 나 버렸다. 통계청의 추정에 따르면 2050년에는 23만명으로 다시 반토막이 날 것이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된 것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보육환경은 거기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남녀 차별 없이 똑 같이 교육받고 사회 생활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애를 낳은 사람이 양육에 대한 책임을 옴팡 뒤집어쓰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직장을 다니던 사람은 직장을 포기하거나 다행히 직장을 유지하더라도 경력에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직장 다니면서 애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다들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소설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전업주부를 해서 애를 잘 키운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정부에서는 올해부터 저소득층 가정의 1세 미만 아이에게는 월 10만원의 양육수당을 주고 소득하위 50% 계층에는(전체 보육 대상 아동의 20%에 해당하는) 무상보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진일보한 조치이고 해당자들은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애를 갖을지 고민하는 젊은 부부가 출산을 결심하게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인 보육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야한다. 출산은 가정에서 하되 보육은 국가에서 책임진다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원하면 언제든지 자녀를 보육시설에 보내서 최상의 보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수많은 보육시설을 짓고 보육교사를 채용해야 할 것이다. 건설경기가 활성화되고 많은 사회적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한국형 뉴딜에는 미래세대와의 약속이 담기면 좋겠다. 배속의 태아에게, 그리고 아직 엄마 아빠의 몸안에 있는 난자와 정자에게 약속하는 것이다. 이 땅에 일단 태어나기만 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보육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고 해주겠다고. 대신 나중에 열심히 일해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진 빚도 갚아주고 우리의 노후도 책임져야 한다는 꼬리표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그 얘기를 미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by 카이로스 | 2009/01/04 21:09 | 일반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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