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치료될 수 있을까?-나쁜 거대 과학 2

의학학술지는 이런 문제에 깊이 빠져있다. 내가 자격증을 받았을 때 부지런하고 성실한 의사들은 의학의 일반적 발전상황과 자신의 전문분야의 발전 상황을 따라 갈 수 있었다. 의학 전분야를 다루는 명성있는 학술지(란셋 Lancet, BMJ, NEJM )과 두 개 정도의 전문분야 잡지를 구독하였다. 이런 학술지들은 모세의 십계명 서판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의학논문이 어디론 가는 가야하는데 그곳이 바로 학술지였다. 학술잡지의 명성은 인용지수라는 지표에 기반해서 정해진다. 인용지수는 그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 같은 해에 인용된 횟수를 계산해서 구해진다. 예를들어 NEJM의 인용지수는72.4이고 란셋은 44인 반면 Irish Medical Journal 0.31이다. 의학계의 성취도는 인용 횟수 지표와 h-index(출판 논문 수와 각 논문의 인용횟수로 결정되는)으로 판단된다. 불가피하게 학계에서는 이 지표를 염두에 두게 된다. 영국의 경제학자의 이름을 딴 굿하트의 법칙(Goodhart' law)에 따르면 어떤 변수가 정책의 목표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원래 그 지표로 측정하고자 했던 현상이나 특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급속도로 사라지게 된다. ; 새로운 지표를 수용하면 그 지표 값을 최대화하려는 행동을 초래하고, 왜곡된 인센티브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이 초래된다. 캘리포니아 대학(UC Davis)의 법학 및 과학기술 교수인 마리오 비아기올리(Mario Biagioli)는 개인이나 기관이 인용지수와 같은 서지지표들에 작용하는지에 대한 분석에서 이 법칙을 인용하였다. 이 작용은 점점 더 고도화되는데.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새로운 책략 중의 하나는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면서 리뷰어를 추천할 때 가짜 이메일 주소를 제공하는 것이다.(학술지에서는 투고된 원고들을 같은 분야의 전문가인 리뷰어에게 보내서 검토를 하도록 하는데 이것을 동료검토(peer review)라고 한다). 저자는 가짜 이메일을 이용하여 훌륭한 논문이라는 검토의견을 학술지에 보냄으로서 출판될 가능성을 높인다. 어떤 대학에서는-특히 신생 국가에서는-연구자들이 인용지수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같은 기관에 있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비공식적으로)인용할 의무를 지우기도 한다. 비아기올리는 대학의 감독기능-여러 지표, 인용지수, 인용통계, 순위에 대한 선호-은 새로운 형태의 나쁜 행태에 인센티브를 줄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차대전 후에 생의학연구가 극적으로 팽창하면서 이런 새로운 연구들을 실을 학술지의 숫자도 급증하였다. 과학논문 출판 분야는 전세계적으로 190억 파운드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 숫자는 음반산업과 영화산업 중간 어디 쯤 해당하는 규모이다. 과학학술지의 이익률은 거대기술기업 못지않은데 2010년의 엘지비어(Elsevier)의 매출은 724백만 파운드이고 전체 수입은 20억 파운드로 이익률이 36%에 달한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정말 주목할 만한데. 생산품(과학논문)은 학술지에 꽁짜로 제공된다. 그리고 이 생산품의 소비자는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기관이나 대학이다. 2017년 가디언지에 실린 컬럼에서 스테판 브라니는 엄청난 수익을 내는 과학논문 출판 비즈니스가 과학에 나쁜가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마치 뉴욕커나 이코노미스트지가 저널리스트에게 무료로 각자의 글을 쓰고 서로 그 글을 편집하도록 요구하고 정부에게 그 비용을 대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외부의 관찰자가 이러한 절차를 보면 어리둥절할 정도의 불신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04년의 의회의 과학기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전통적인 시장의 공급자는 자신의 제공하는 생산품에 의해 돈을 받는다담담하게 기술하였다. 2005년 도이치뱅크의 보고서는 이것을 이상한 제3자 지불제도로 국가가 대부분의 연구를 지원하고 연구의 질을 체크하는 사람들의 봉급을 지불하고 출판된 생산품의 대부분을 구입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믿기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로버트 맥스웰(Rober Maxwell)이다. 예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해 있던 얀호흐(Jan Hoch)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의 공무원이 되었고 이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 전쟁 직후 영국 정부는 비록 영국의 과학이 성장하고 있지만 과학학술지는 낙후되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영국 출판사이 버터워스(Butterworths)를 상업적으로 경험이 많은 것으로 여겨지던 독일의 출판사인 스프링거(Springer) 합치도록 했다. 당시 맥스웰은 스프링거를 대행하여 과학 논문을 영국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버터워스의 책임자는 맥스웰을 알고 있었고 맥스웰과 과거 스파이었던 오스트리아의 금속공학자 폴 로스바우드(Paul Rosbaud)를 고용했다. 1951년 맥스웰은 버터워스와 스프링거의 주식을 구매하여 페르가몬(Pergamon)이라는 새로운 출판사를 설립했다. 로스바우드는 이 새 학술지가 전후에 과학연구의 붐을 타고 생산되는 모든 연구를 수용하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각 분야의 지도자급 인사들에게 각 분야마다 새로운 학술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하고 그들을 새로운 학술지의 편집인으로 앉히면 된다는 단순하고 멋진 생각을 해냈다. 맥스웰은 과학자들을 그의 옥스퍼드 별장인 헤딩톤 힐 홀에서 접대했고 그들은 쉽게 유혹에 넘어갔다. 1959년에 페르가몬은 40개의 학술지를 발행했고 1965년에는 그 숫자가 150개로 늘어났다.

맥스웰은 이 사업이 거의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왓슨(Watson)과 크릭(Crick)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이후에 미래는 생의학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맥스웰은 이 비즈니스를 영원한 파이낸싱 머신이라고 불렀다. 요즘 학술지는 과학의 방향을 설정한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학술지의 편집자들에게(특히 셀, 네이처, 사이언스 같이 새롭고 화려하고 인용지수가 높은 기초과학학술지) 어필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생산할 유인이 생긴다. 맥스웰이 1991년 의문사(자신의 요트에서 추락)한 후에 페르가몬과 페르가몬의 400개 학술지는 엘지비어(Elsevier)에 매각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에 의해 이런 출판사들이 구식으로 되버릴 것으로 널리 예측되었지만 엘지비어는 수백개의 학술지를 묶어서 이에 대한 전자접근성을 파는 방식으로 인터넷 환경을 수용하였다. 2015년에 파이낸셜타임즈는 엘지비어를 인터넷이 없앨 수 없는 비즈니스를 평가하였다. 로버트 맥스웰이 1988년이 정확하게 예측한 것처럼 미래에는 몇 개의 거대한 출판사만이 남게 되고 이 출판사들은 전자시대에 인쇄를 하거나 배달할 필요가 없어서 재료비 없이 순수이익을 거두게 될 것이다.

맥스웰은 약탈적 학술지의 극단적 뻔뻔함을 숭상했었을 것이다. 그 학술지들은 연구자들이 어디라도 시급히 논문을 출판해야하는 필요성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10여년 전에 출현했다. 이 학술지들은 저자들이 돈을 내는 한 뭐라도 출판을 해줄 것이다. 대략 8000종의 학술지들이 일년에 42만개의 학술논문을 출판하고 있다. 나는 이들 학술지로부터 논문을 제출하거나 편집진에 참여해달라는 요청 메일을 수시로 받는다. 이런 새로운 산업이 번창하는 것은 학술지가 과학자보다 더 많은 지배력을 갖고 있는 의학연구의 현황을 볼 때 당연한 논리적으로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도 약탈적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보지 않는다. 영향력있는 학술지에 실린 대부분의 논문도 잘 읽히지 않는다. 출판된 논문의 절반정도는 한번도 인용되지 않는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 영국의학회지(the British Medical Journal)의 편집인이었던 리처드 스미스(Richard Smith)는 의학학술지의 편집인은 겨자 제조업자와 비슷하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둘 모두 결코 사용되지 않는 생산물로부터 돈을 벌기 때문이다.

영향력있는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들은 외부로 동료평가(peer review)를 의뢰한다. 요즘은 이 절차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폭넓은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결국은 영향력이 크든 작든 어떤 학술지엔가는 실리게 된다. 만일 논문 게재가 거부된면 저자들은 다른 학술지에 투고를 하고 이 과정이 어딘가에 실릴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영향력이 높은 미국의사협회지(Journal of the Americal Medical Association)의 부편집인이 드러몬드 레니(Drummond Rennie)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나치게 파편화된 논문도, 가설이 너무 시시한 논문도, 다른 연구를 지나치게 편향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인용한 논문도, 너무 잘못된 연구설계도, 너무 엉망인 연구방법도, 연구결과를 아주 부정확하거나 모호하거나 상반되게 제시한 논문도, 자기데이터에 맞춘 자료분석도, 너무 순환적인 주장도, 너무 시시하거나 정당화될 수 없는 결론도, 지나치게 공격적인 문장이 있는 논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논문은 결국은 출판된다.

 

많은 연구자들이 학술지에 공개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연구들이 온라인으로 공개적으로 출판이 되어야 하고 모든 데이터는 검증가능하도록 제공되어야 하고 모든 임상실험은 등록이 되고 프로토콜 역시 비슷하게 출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임상시험 연구계획서가 사전에 면밀히 검토되고 그 계획이 유용한지, 그리고 진짜 의미있는 문제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지를 결정할 수 있는 기본 요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웰컴오픈리서치(Wellcome Open Research)F1000Research 같은 혁신적인 출판 플랫폼에서는 과학자 자신들이 학술지 없이 출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엘지비어도 학술지의 시대는 종말을 맞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고 지금은 그들 자신을 빅데이터회사로 그리고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이 과학을 진전시키고 보건의료를 향상시키며 수행능력을 높이는 것을 도와주는 국제정보분석비지니스로 설명하고 있다. 엘지비어는 자신의 위치를 과학자들에게 소프트웨어와 같은 출판서비스를 판매하는 유일한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페이스북이나 구글의 맞상대로 할 수 있는 주체가 되려고 한다. 리처드 스미스(Richard Smith)는 엘지비어가 전세계의 과학자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그들이 수요, 요구, 갈망, 약점, 구매패턴-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익은 이러한 데이터와 지식으로부터 산출될 것이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고객인 동시에 생산품이듯이 과학자들도 엘지비어의 고객이자 생산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항은 진행되고 있다. 스웨덴과 독일의 대학들은 엘지비어 구독을 취소했고 엘지비어가 고소한 사이허브(Sci-Hub) 같은 웹사이트에서는 67백만 편의 논문에 대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기구에서는 2020년까지 모든 과학논문에 대한 무료접근성을 촉구했고 EU차원의 무료접근 기반의 과학논문 출판 플랫폼을 개발하는 계획의 입찰을 받고 있는데 과학지식에 대한 공공접근을 위해 일하고 있는 연구자인 존 테넌트(Jon Tennant)는 이것을 '공공자금을 개인의 손에 넘겨주는 새로운 경로를 찾는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공동체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한 통제권을 찾는 방법 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존 이오아니디스(John Ioannidis)는 인센티브의 왜곡이 스말디노(Smaldino)와 맥엘레아스(McElreath)에 의해 기술된 자연선택 과정에 의해 어떻게 새로운 종류의 매니저과학자-성공여부가 창의적 아이디어나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연구비 수주액과 박사과정 학생 수 그리고 포닥 숫자로 측정되는-가 창조되는지를 관찰했다.

 

물론 연구비 수주를 가장 성공적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많은 우수한 과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중에 상당부분(여러 곳에서 대다수)은 가장 공격적이고 모든 것을 차지하고 계산하는 매니저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매우 영리하고 자기방어를 하며 불확실성의 시대에 자신의 연구 영역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우리가 괴물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돈을 빨아들이고 가장 자기 PR을 잘하고 자신의 연구를 부풀리고 과장하고 자기비판을 거의 하지 않도록 독려를 하고 있다. 이것이 21세기의 우리의 과학영웅들의 모습이다.

 

거대과학과 거대 제약회사는 어느 때보다도 밀착되어 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의학연구자들은 이것을 이해충돌 또는 과학적 진실성에 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상당수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파트너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짜증을 낸다. 영국에 있는 제약회사는 캠브리지의 아덴브로크 병원(Addenbrooke's Hostpital) 같이 명망있는 의학연구소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 미국의 클리블랜드 클리닉과 같은 거대한 메디컬센터에는 스태프들이 산업계에 협력하는 것을 강하게 권장한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에서는 2016년에 생의학계의 고참연구자가 회사의 면역촉매안식년프로그램(Immunology Catalyst Sabbatical Programme)- 과학자를 GSK 실험실에 배치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2000년에는 당시 NEJM의 편집자였던 마르시아 엔겔(Marcia Angell)학문으로서 의학이 지금 판매중인가?’라는 논평을 쓰기도 했는데 이 논평을 통해 의학연구자들과 산업계-특히 거대 제약회사-의 건강하지 않은 관계가 많아지는 것을 경고했다. 그 직후에 토마스 루안 박사는 학문으로서 의학이 지금 판매중인가? 아니 현재 주인의 거기에 매우 행복해하고 있다라는 글을 썼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나 대학으로부터 독립적인 새로운 형태의 연구기관 출현하고 있다. 대성당규모 산업체캠퍼스는 제약회사나 엘리 브로드(Eli Broad)나 마크주커버크(Mark Zuckerberg) 같은 억만장자 자선사업가에 의해 설립되었다. 주커버커와 소아과 의사인 아내 프리실라 챈(Priscilla Chan)은 의학연구에 30억불을 쓸 계획이다.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고 관리한다는 겸손한 목표로‘.(어떤 평론가들은 30억불은 이런 야망을 실현하기에는 부족한 액수라고 지적했다.) 이런 연구소들이 수익이 많이 나는 생의학테크놀로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캠퍼스의 전형적인 예는 노바티스에서 소아의 림프구성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변형 CAR(chimeric antigen receptor) T세포치료제인데 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환자 일인당 475천 달러의 비용이 든다. 과학저술가인 짐 코주벡은 이런 새로운 생의학기술은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사악한 힘이라고 경고했다.

바이오테크는 지금 훨씬 더 고도화하고 있고 전세계가 알고 있던 어떤 것보다 강력한 문화적 힘이 될 것이다.-이것은 갈수록 더 불공평하게 보일 것이다. 투자자 제일주의 문화에서 우생학, 시험관시술, 유전자와 세포를 수익이 나는 생물학의학으로 변형시키는 것 등이 이미 일반화되었고 불평등은 가속화되고 있다. 가난하고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의료와 건강에 대한 접근성을 촉진하는 사회의 평등한 힘 대신 바이오테크의 인공적인 세상은 엘리트 과학자들과 그들의 변호사의 부를 증가시키고 의학을 훨씬 더 비싸고 구입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자본주의자선활동-주커버크, 브로드, 빌게이츠 같은 사람에 의한 의학연구지원은 국제 보건에 새로운 커다란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빌 메린다 재단은 훌륭한 일을 많이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재단이 책임성이 결여되어 있고 그들의 부를 창출하는 마이크로소프트나 페이스북 같은 산업에 대한 비판여론을 모면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자선활동 자체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록펠러, 포드, 카네기 등은 그들의 비즈니스방법이나 노동자 처우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응할 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자선활동을 언급해왔다. 과격한 자유주의자이자 트럼프를 지지하는 피터 티엘(Peter Thiel)-페이팔 창업자-같은 새로운 금권정치가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일한 것, 즉 영생을 살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거대과학을 지원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자본주의자선활동이 보건의료나 의학연구 모두에 사악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DS활동가인 그레그 곤슬레이브(Gregg Gonsalves)는 게이트재단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는데 아침에 게이트가 침대의 어느 방향에서 일어나느냐에 따라 국제보건의 영역이 바뀔 수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입헌군주제도 아니다. 이것은 빌게이트와 멜린다가 원하는대로이다.‘ 이 재단은 제약회사들과 파트너쉽을 형성하는데 관심이 많고 이 분야의 전직경영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다. 2009년 란셋에 보고된 한 연구에서는 재단의 대부분의 연구비는 상업기관을 지원하고 NGO로 가는 펀드의 대부분은 고소득국가의 NGO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런던의 퀸메리대학의 국제공중보건 교수인 데이비드 맥코이(David McCoy)억만장자에게 자선활동을 더 많이 하라고 호소하는 것은 국제보건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는 억만장자를 그렇게 많이 만들어내지 않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전까지는 이런 자선활동은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잠재적으로 정치경제를 변화시킬 필요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2003년에 완성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거대과학의 가장 위대한 전기로 생각되었다. DNA 이중나선구조의 공동발견자인 제임스 왓슨은 우리 인간을 분자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과거에는 우리의 운명이 별자리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궁극적인 수단이다. 지금 우리는 큰 틀에서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유전자에 있다는 것을 안다.’ 사실 두 개의 경쟁적인 게놈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하나는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를 책임자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공공컨소시움에 의한 것과 나머지 하나는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라는 개성강한 사업가가 운영하는 셀레라(Celera)라는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에 의한 것이었다. 1999년 콜린스는 NEJM'이 아이디어는 루이스와 클락 에드몬드 힐러리 경 심지어 닐 암스트롱 같은 위대한 탐험처럼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대략적인 게놈 지도는 2000626일 빌 클린튼이 백악관에서 발표하였는데 영국의 블레어 수상이 위성연결로 함께 참여하였다. 클린튼과 블레어는 모든 게놈 정보는 무상으로 제공되어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콜린스와 벤터는 두 경쟁 프로젝트가 서로 협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것을 말하는 위대한 재주가 있었던 클린튼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놀라운 지도이다. 오늘 우리는 신이 생명을 창조했던 언어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대부분의 인간 질병의 진단, 예방, 치료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자신있게 예측할 수 있다.‘ 항상 과학기술과 씨름했던 블레어는 경건하게 동의했다. ’오늘의 발전은 너무 엄청나서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 프랜시스 콜린스는 약간 압도되어 오늘은 전세계가 행복한 날이다. 과거에 신만이 알고 있던 우리자신에 대한 설명서를 처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이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심오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인가?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전환점이라고 여길 것이다.‘ 20012월에 JAMA에 게재된 논문에서 콜린스는 ’2020년까지는 당뇨, 고혈압, 정신병과 많은 질환에 대한 새로운 유전자 기반 맞춤약물이 시장에 출시될 것이고 모든 암은 정확한 분자지문을 갖게 되고 발암 유전자는 카탈로그화 되어 치료는 개인적으로 이 분자지문을 타겟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비록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런 과장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했지만 학계에서는 소수의 반대자들이 있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닐 홀츠만(Neil Holtzman)과 런던 킹스칼리지의 테레사 마테우(Theresa Marteau)는 백악관 행사 직후에 NEJM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사회 구조, 생활습관, 환경의 차이가 유전적 차이보다 질병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유전자의 망토는 황제의 새 옷처럼 감지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단이나 어민(ermine)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의학 또는 과학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이런 과장된 것 너머로 볼 수 있어야 한다.

 

2010년 과장이 증발되고 난 후 몇 년이 지나서 스위스 과학대학 ETH 쮜리히 모니카 기슬러(Monika Gisler)는 논문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사회적 거품의 한 예라고 기술했다. ‘연구결과에 대한 과장이 사회적 거품에 연료를 제공했지만 실제 손에 잡히는 성과물이 뒤따라오지 않았다. 과학계의 컨센서스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실을 거두려면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콜린스의 에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실제 적용은 미미하였고 이것을 역사상 최대의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여겼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정신과의사인 조엘 패리스(Joel Paris)는 대답이 길모퉁이 바로 저편에 있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있던 자라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위대한 미국 분자의학의 거두들은 실토하고 나섰다. 명성이 높은 암생물학자인 로버트 와인버거(Robert Weinberg)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임상적 활용은 대단하지 않았고 투입된 자원과 비교하면 미미했다. NIH의 전임책임자였던 미국암연구의 중진이었던 해롤드 바무스(Harold Varmus)NEJM몇몇 개의 주요한 변화만이 일상적인 진료행위에 들어갔는데 그 대부분은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기 전에 발견된 결과들이었다고 발표하였다. 유전체학(Genomics)은 과학을 하는 방법이지만 의학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2009년에 프랜시스 콜린스는 26명의 다른 유전학자와 함께 네이처에 고찰 논문을 썼는데 여기에서 모든 노력과 예산에도 불구하고 유전학자들은 흔한 인간 질환들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클린스는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아직까지는 직접적으로 대부분의 보건의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공정하다. 크레이그 벤터 역시 이 발견이 의학이나 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고백했다.

비록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예상했던 대전환을 가져오는데는 실패했지만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시대의 중요 동력이 되고 있다. 키드스캔(Kidscan) 소아암센터자선기관의 책임자인 데이비드 페이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연구자가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빠르게 문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몇 년에 걸쳐서 모든 게놈 데이터를 담으려는 믿기 어려운 정도의 컴퓨터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거의 40 엑사바이트 exabytes)-유튜브(연간 1-2 엑사바이트)나 트위터(연간 0.2 엑사바이트)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효과적인 치료법을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핵심정보를 발견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적다. (엑사바이는 1018, 퀸틸리온 quintillion 바이트)

 

거대과학의 실패는 호주의 바이러스 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맥팔레인 버넷(Macfarlane Burnet) (1899-1985)이 경고한 바 있다. 그의 책 유전자, 드림, 현실(Genes, Dreams and Realities)1971년 출간되었을 때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실험실 과학의 기여는 사실상 끝이 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과학에서 현대의 기초연구는 질병 예방이나 의료의 향상에 직접적인 기여를 전혀 못하고 있다. 버넷은 미래의 도전은 감염병이 아니라 문명, 퇴행, 고령에 따른 질환이고 이런 질환은 황금시대에 감염병을 정복했던 것 같은 방식으로 정복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책에 대해 분노했지만 그의 명성 때문에 그의 주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그와 같이 노벨상을 공동수상했던 면역학자 피터 미드와(Peter Medawar) 경은 이 책은 특별한 정신적 착오라고 말했다 1980년 뉴욕서평에서 그는 버넷의 정신없는 선언에 대한 해독제로 나는 향후 10년 내에 다발성경화증, 소아당뇨, 현재 치료가 불가능한 것을 알려진 암중의 최소 2개 정도는 치료법이 발견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역사는 미드와가 아니라 버넷의 편이었다. 그의 대담한 예측과 선언은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현대의 생의학 쇠락은 중세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둘 다 높은 이상으로 시작했다 이 일을 이어받은 경력주의자들에 의해 이상이 오염되었고 동시에 립서비스만 하였다. 세계적인 성공이 원래의 이상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목격했다. 둘 다 스스로에게 봉사하는 고위직을 창조했다. 이 전문직의 의제는 학문엘리트에 의한 정해졌다(주교나 추기경) 반면에 일상적인 일은 낮은 수준의 일반의나 병원의사들(교구목사, 수도승) 수행되고 엘리트들은 실제 환자진료에는 관여하지 않으면서 낮은 수준의 의사를 임명하는데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정통교리는 컨센서스 컨퍼런스(성직자들의 교회회의)에 의해 확립되었다. 엘리트는 스스로에게 봉사했다 그리고 비슷한 가치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위치에 앉혔다. 엘리트들은 일반인의 존경을 받았고 정치가와 왕족을 움직일 수 있었다. 엘리트들은 연구비를 일반인과 정부(십일조세금)로부터 받았고 엘리트들이 도전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가 더 높은 곳에서 (/과학)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존 이오아니드스는 사회가 전체적으로 기대수준을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고귀한 시도이자 수익률이 낮은 시도이다. 의학연구 중 아주 일부만이 임상결과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향상을 가져온다. 우리는 이 사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진짜 과학은 너무 힘들어서 높은 지능과 열정과 호기심을 결합할 수 있고 진실에 헌신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진짜 과학은 관료집단이나 경력집단의 위원회에서 계획되고 수행될 수 없다. 현대의 생의학 연구는 사회와 의학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과학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위험하고 사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필요에 봉사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데이터를 생산하고 경력을 쌓는 것 외에는 다른 기능이 없는 연구가 위험한 것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거대과학은 자신이 받는 온갖 열렬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실망을 안겨줬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러게 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주요 발견은 황금시대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었다

by 카이로스 | 2019/09/29 16:51 | 의학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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