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완주-jtbc 마라톤대회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평소알고 지내던 식약처와 환경부의 공무원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학회의 추천으로 내가 대테러비밀공작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얘기하는 황당무계한 꿈을 꾸던 중이었다. 새벽 5시 반에 계획대로 기상해서 아침을 먹었다. 평소처럼 토스트 2쪽에 샐러드와 사과를 커피와 함께 먹고 떡을 하나 추가로 먹었다. 화장실 업무도 무사히 마쳤다. 장시간을 달리는 마라톤에서 장과 방광을 깨끗이 비우고 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드디어 출발. 출발지점의 내빈석에 요즘 부쩍 머리가 많이 난 박원순 서울시장의 모습도 보인다. 한동안 마라톤 플코스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요즘도 훈련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체온 보호를 위해 작을 딸이 만들어준 비닐 옷을 입고 처음 2킬로 미터를 천천히 뛰었다. 그 다음부터는 비닐 옷을 벗어 던지고 1킬로 달리고 30초씩 걷는 나만의 걷고달리기 방식으로 진행을 했다. 도로는 한 방향만 통제를 해서 옆에는 차 들이 달리고 있었고 교통통제에 항의하는 운전자와 보행자도 간간이 보였다. 물론 사전에 충분히 예고되긴 했지만 모르는 운전자 입장에서 갑자기 못 가게 하면 황당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들은 마라톤 대회가 전체 서울 시민의 축제가 되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다.

  옆에는 4시간50분 풍선을 매단 페이스메이커와 일군의 무리들이 같이 달린다. 나도 여기와 보조를 맞추었다. 약간 앞서 달리다가 걸을 때는 추월 당하고 그리고 다시 따라잡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5시간 안에 들어오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이 팀과 함께 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최대한 오래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서역을 지나자 도로 전체가 통제되고 응원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마라톤 대회 분위가 났다. 흥겨운 꽹가리도 등장하고 응원나온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도 했다. 응원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했다. 응원을 받는 다는 것은 공동체 내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내면으로부터의 충만함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맞은 편에서는 벌써 반환점을 돌아온 선수들이 지나간다. 열 명쯤 되는 아프리카 선수들이 제일 먼저 지나가는데 이 사람들이 달리는 것으로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우리나라 선수들이 지나가는데 우리 선수들과 아프리카 선수들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올해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한 사람이 아프리카 선수가 아니라 직장을 다니는 아마추어 일본 선수라는 것을 떠올리면 꼭 그렇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당시 혹독한 기상환경 속에서 2시간14분이라는 형편없는(?) 기록으로 우승을 했는데 아마도 아프리카 선수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하프를 지날 때 시간을 보니 2시가 22. 현재까지는 그리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단순 통계로 보면 5시간 안에 완주할 수 있지만 문제는 후반에 페이스가 얼마나 떨어지느냐에 달려있다. 잠깐 화장실 업무를 보러 간 사이에 4시간50분 페이스메이커는 멀리 앞서가 버렸다. 다시 따라잡기는 어렵다.

  22킬로를 지난 시점에 맞은 편에서 앞서 달리던 아내가 튀어 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갈수록 잔소리가 심해져 함께 살기가 쉽지는 않지만 내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마라톤 완주를 한 것도 전적으로 아내의 공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는 속담도 있지만 옆에서 계속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극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도 누군가의 꼴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더 달리다보니 앞에 탱크탑을 입고 뛰는 여성이 보인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누군가와 보조를 맞춰 달리면 크게 의지가 된다. 풀코스를 달리다 보면 이런 저런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게 되는데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페이스메이커가 있지만 이 사람들은 일정한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전체 코스를 같이 보조를 맞춰 달리기는 쉽지 않다. 그때 그때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도 하고 때로는 내 그림자와 함께 달리기도 한다. 좋은 몸매에 말총머리를 찰랑찰랑 하면서 뛰는 여성이 앞에 있으면 한동안 힘든 것을 잊고 뛸 수가 있다. 탱크탑을 입은 여성을 보고 눈이 크게 떠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몸이 불편한지 계속 달리지 못하고 멈춘다. 아쉽지만 추월했는데 내가 간식을 먹는 사이 그리고 걷는 사이 또 나를 추월해서 앞서 달리고 있다. 반환점을 지난 오르막에서 내가 다시 추월하는데 파이팅을 외쳐준다. 아마도 걷다 달리다 하는 내모습을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꼈나 보다.

  30킬로 지점에서 준비한 파워젤을 하나 먹었다. 평소 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피해야한다고 주장하던터라 포도당 원액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지만 근육이고 뇌고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포도당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바로 힘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에는 5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지나간다. 파워젤의 힘을 빌어서 대략 킬로미터 당 630초 정도의 속도로 같이 달렸다.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여럿이 같이 달릴 때 느끼는 묘한 쾌감이 있다. 33킬로 지점에 이르자 더는 보조를 맞추기가 어려워서 페이스메이커를 그냥 떠나보냈다. 5시간 완주는 물건너 간 것이다. 34킬로 지점에 이르자 제한시간 초과로 회송차를 타야하는 시간이 적힌 안내판이 나오는데 나는 10분쯤 여유가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걱정한 것이 제한시간을 넘겨 강제로 회송차를 타야 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그 고비는 넘긴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뛰었다. 두발이 동시에 땅을 딛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뛴 게 맞지만 속도는 걷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그런 달리기였다. 35킬로를 좀 지난 지점에서 동탄마라톤클럽의 모리가 나를 발견하고 과일음료도 주고 사진도 찍어줬다. 모리와 나는 2016년 춘천마라톤을 함께 뛰었는데 당시 그는 다리에 쥐가 나서 걷다 뛰다 했고 나도 원래 걷다뛰다를 했던지라 보조를 맞춰 완주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모르는 아줌마가 포도 한줌을 쥐어준다. 대회 중에 포도당액이 아닌 진짜 포도를 먹은 것은 처음인데 그 청량감이 좋았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보통 쵸코파이와 바나나를 제공하는데 포도를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서역을 지나서는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주변에는 차들이 밀려있고 간간히 응원을 해주는 사람도 있고 차량통제에 항의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로에는 달리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나까지 걸으면 교통통제의 명분이 없을 것 같아서 계속 뛰었다. 그래도 그나마 큰 대회라 끝가지 주로를 확보해준다. 작은 대회에서는 제한 시간 전에라도 운전자들의 성화를 견디지 못해 차량 통제를 풀어버리고 주자들을 인도로 올려버린다.

드디어 잠실 주경기장이다. 다 죽어가던 사람들도 마지막 트랙을 돌때는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열심히 제대로 뛰게 된다. 트랙 반대쪽 결승선에서 내 이름을 외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나보다 한시간 쯤은 먼저 들어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승선에 다달으자 아빠를 외치는 작은딸의 얼굴이 보인다. 드디어 골인. 기록은 5시간 20. 비록 5시간은 넘겼지만 두 여인의 환영을 받으며 다시는 못할 것 같은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다시 한 것이다.

  저녁에 jtbc 뉴스를 열심히 보았다. 중앙일보에서 jtbc로 주관사가 이전되면서 제일 크게 바뀐 것은 마라톤 대회를 육상경기가 아니라 일반인의 축제로 만들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스에서도 우승자인 에티오피아의 니게우 선수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 대회 참가자와 10킬로에 참가한 일반인의 인터뷰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목표도 속도도 제각각였지만 자신만의 레이스를 끝낸 2만 마라토너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습니다라는 앵커의 마무리 발언과 함께 대회 출발 때의 영상이 나왔는데. 그 순간 아내가 여보다라고 소리친다. 방송 카메라에 내모습이 잡힌 것이다. 1jtbc 마라톤대회는 이래저래 잊지 못할 마라톤대회가 되었다

by 카이로스 | 2018/11/05 10:58 | 마라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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