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날 바다' 후기

그날 바다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물론 큰 감동을 주는 픽션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앵커를 내려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가설을 과학적 근거를 이용해서 믿게 만드는 넌픽션이라는 점에서다.

현재까지 정부의 공식적인 침몰원인 발표는 인천에서 출발한 배가 순조롭게 운항하다가 사고해역에서 미숙한 조타수가 큰 각도로 핸들을 틀었는데 화물과적으로 배의 복원성이 낮아진 상태에서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침몰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침몰직전에 사람이 튕겨나갈 정도의 큰 충격이 있었다는 생존자의 증언이 있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커다란 외력이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선발자동식별장치(AIS)의 원시자료를 가지고 추정해보면 배가 알려진 것보다 사고해역의 섬(병풍도)에 근접해서 지그재그로 운항하였고 항적 경로가 해저지도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앵커를 해저에 내려 침몰시킨 것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것을 숨기기 위해 AIS자료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세월호 침몰원인을 찾아가는 방식은 논리적 추론 방법 중에 귀추법(abductive reasoning) 또는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에 속한다. 이 추론은 어떤 현상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해서 이 현상에 대한 가장 그럴듯하고 가장 간단한 설명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어떤 놀라운 현상 P가 관찰된다.

2. 만일 가설 H가 참이라면 P는 당연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3. 따라서 가설 H가 참이라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있다.

이 영화에서 과학적 근거로 제시하는 AIS 원시자료 분석결과, 배의 이상한 운행에 대한 생존자 증언, 차량 블랙박스 영상, 침몰당시의 컨테이너 위치, 녹 슬은 왼쪽 앵커 등이 P에 해당하고 H앵커를 내려 해저에 박아서 배를 침몰이다. 3번에서 H가 참이 아니고 참이라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있다고 한 이유는 더 그럴듯한 설명이 나올 때가지 잠정적으로 참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앵커가 해저에 박혀 침몰했다는 설명이 최소한 급히 핸들을 틀어 화물이 쏠려서 침몰했다는 정부의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이 가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먼저 동기를 설명할 수 없다. 도대체 세상에 누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겠는가? 고의로 침몰시키고 관련 자료를 조작하려면 많은 사람(여러 명의 선원, 해경, 해수부 등)이 관여를 해야 하는데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AIS 자료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거나, 출항 후 앵커가 사용된 적이 없었던 것이 확인되거나 아니면 앵커의 길이가 해저에 닿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 가설은 자연스럽게 폐기될 것이다. 반대로 AIS를 조작했다는 증언이 나오거나 선원들 조사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이 가설의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고 앵커를 내려 배를 침몰시켰다는 선원의 증언이 나온다면 이 가설은 세월호의 진짜 침몰원인이 될 것이다.

가설의 진위여부를 떠나 이 영화는 정부가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해 국민들에게 좀 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침몰원인에 대해 의문을 가질수록 좀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by 카이로스 | 2018/04/17 11:34 | 일반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hojangkwon.egloos.com/tb/442373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