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복수' 서평

의학의 한계는 중요한 책이다. 서문은 전체 책의 개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리히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현 시대의 언어, 신화, 의식, 법 등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를 추적하는 그의 기념비적 계획의 일부로서 후기 산업사회에 맞는 대안 모델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대단한 일에 그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으며 의학의 한계는 의학이 우리사회에 미친 파괴적 영향에 대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치료는-대안 모드-우리로 하여금 건강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학교없는 사회에서 예고하고 성장을 멈춰라(Tools for Conviviality)’에서 제기한 주제들의 확장으로서 건강이 점차로 희소화되고 있는 상품으로 정의되고 있다. 의학에서 신뢰의 위기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기관의 위기와 동일시되고 있다.

일리히는 우리 모두의 점증하는 의심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그 힘을 얻고 있는 컬트(cult) 운동의 배후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고 자전거를 찬양하면서 제트비행기로 맞출 수 있는 일정을 소화하고 수년 동안 네 권의 혁명적인 책을 쓴 것은 존경과 의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모든 패션과 마찬가지고 아이디어에서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 어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토인비가 그를 파악한데로)와 마찬가지로 일리히도 많은 해석과 동시에 진지하고 비판적인 청취가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책의 언어가 개인적이고 때로는 독특하기 때문에 두가지 모두 쉽지가 않다. 한편으로는 일리히는 의학지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과 지적인 틀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직관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도록 프로그램할 수 있는 스스로 강화하는 기관의 부정적 피드백 루프로 의학의 복수가 제시되고 있다. 익숙한 임상적 의원성(clinical iatrogenesis)은 산업적으로 결합을 간직하고 동시에 환자역할을 기하급수적으로 잉태시켜 병든 사회를 강화시키는 사회적 의원성(social iatrogenesis)으로 아주 적절하게 확장되고 있다. 또다른 확장은 구조적 의원성인데 이는 고통에 대한 건강한 반응이 지속적으로 마비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법적 단어구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응 노력을 필요하다.

그런 노력은 분명히 가치가 있고 비록 책의 첫 문장이 의료기관이 건강에 주요한 위협이 되고 있다..... 부유한 국가에서 의학의 식민화는 병들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되어 있지만 이 책 자체는 공격적인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논리학자라기 보다는 선생의 모습인 한 천재에 의한 지적인 자극에 가깝다. 첫 세 챕터의 제목은-현대의학의 유행(대부분이 환상인 의학의 효과에 대한 섹션), 삶의 의료화(기대의 의료화에 대한 섹션, 모두 해로운), 과잉 산업화 사회의 부산물로서 의료화(모두 파괴적인)- 우리의 의료에 대한 기계적 철학을 향한 포도탄의 연발사격 같이 보인다. 그러나 과장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강력한 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일관성 없는 표현이나 일부 명백한 오류에 대해 까다롭게 비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미 들어났듯이 이 책에서 의료 자체가 진짜 타켓은 아니고 단지 다음의 논제를 위한 셋팅인 것이다. “모든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가 현재의 건강 개념을 결정그리고 사람들의 안녕은 고통, 장애,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한 개인의 책임성을 가정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해서 증가따라서 고통, 병듦, 죽음은 비극적이게도 삶의 질에 덜 기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가 의학의 복수이다. 이것이 일리히 자신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인식과 함께 신화와 도상학을 바탕으로 하는 책의 웅장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종합의 배경이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들을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도전에 대한 그의 직관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진정으로 일리히가 걱정한 것 그리고 그가 우리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병원병동으로 변한 세상에서 마취되고 무능력하고 외로운 생존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그의 철학은 정신의학자 랭(Laing), 정신병리학자 사스(Szasz), 그리고 철학자 푸코(Foucault), 그리고 본능적으로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많은 학자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일리히가 영향이 큰 이유는 우리의 점증하는 의심에 초점을 제공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걱정시키는 것은 이런 새로운 통찰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것과 일리히가 제시하는 대안-의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과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남을 돌볼 권리에 대한 위협이다.

 

The Lancet, December 21, 1974

 

by 카이로스 | 2017/10/10 22:57 | 이반 일리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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