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대뉴스

해도 바뀐지 오래고 설날이 지난지 여러날 되었지만 내 인생의 어느해보다 다사다난 했던 작년에 대한 간단한 기록을 어딘가에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1월 어느날 집에 오는 버스 속에서 경향신문 김후남기자로부터 칼럼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삶터에서' 매달 한번씩 기고를 하게되었다. 정기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처음 쓴 것은 '비만과 지구온난화' 참신하다는 얘기를 여러사람에게 들었고 대운하반대에 대한 글, 광우병 문제를 사전예방의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글들이 임팩트가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정권의 의도에 반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쓴다는 것이 적잖은 부담이라는 것도 느꼈고 그 뒤로는 아무래도 주제 선택이나 논조에 자기검열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지난달에 쓴글을 보육을 국가에서 해야한다는 나름 중요한 글이었는데 마누라로부터 누구나 다아는 진부한 내용을 썼다고 혹평을 받아서 사기가 많이 저하되기도 했다.'비행장소음의 문제', 좌우대결을 진화론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글들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얼마전에 '삶터에서'라는 지면 자체가 없어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시원섭섭한 일이다.
- 4월 경에 제주에서 열린 아시안환경역학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서울의료원 진료부장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한통 받았다. 서울의료원 아토피 연구소장 직에 대한 제의였는데 서울에 오피스를 갖고 싶다는 오랜 바람이 있었고 과외 소득도 기대할 수 있는 지라  승낙을 하였다. 하면서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환경성질환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토피 피부염을 연착륙시켜서 의학적으로 건전한 방식으로 사회적대응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첫번째 외부직책, 즉 겸직을 하게되었다.
- 5월에 상해에 있는 동생집을 방문하셨던 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머리가 찟어지시고 연이어 심실빈맥이 와서 상해에 있는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여동생과 함께 상해를 갔는데 중환자실에 의식도 없이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누워계시고 multiorgan failure가 온 상태로 앞날을 기약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국의료진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투석을 하던지 그냥 최후를 기다리던지 선택하라고 한다. 이제는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국내로 모시는 방법을 다각도로 알아봤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서 이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의식도 돌아오시고 호흡기도 떼게되어서 일주일만에서 비행기 6자리를 사서 침대 채로 한국으로 모시고 올 수 있었다. 그후로도 여러차례 우여곡절이 있지만 현재 집에서 계실 정도가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기 그지 없다.
- 7월에 부원장님으로부터 내가 보건복지대학원장에 임명될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지나가는 말처럼 들었다. 내게 아무런 사전연락없이 6월에 있는 정기인사에서 보건복지대학원장 복수후보로 추천이 되었는데 일순위자에게 문제가 생겨서 내가 대학원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가족과 함께 연구년을 해외에서 보낼 계획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제의를 받으며 사정을 말하고 거절할 생각이 이었는데 누구도 내게 공식적으로 제의를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보직자는 연구년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심사에서 제외되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얼렁뚱땅 원장 임명장을 받고 말았다. 원장에 임명되고 보니 생각보다 높은 자리이다. 서열로만 따지면 천안캠퍼스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위치인 것이다. 물론 대학원장이라는 것이 원로원 멤버같은 성격이어서 활동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째되었건 엉겁결에 내인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보직을 받게되었다. 올라갈만큼 올라갔으니 남은 인생을 사심없이 살게될까 아니면 더 욕심을내게 될까?
- 7월에 동탄에 복층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2005년에 무려 88대의 일을 뚫고 당청이 된 아파트에 드디어 입주를 하게된 것이다. 당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국제환경역학회에 참석중이어서 호텔방에서 인터넷을 통해 당첨사실을 처음 알았다. 경쟁율이 너무 높았는데 당첨된 것으로 보아서 특별한 은덕(아마도 그해 8월에 작고하신 장인어른의은덕)이 있었던 것 같다. 집은 정말 환상적이다. 쓸데없는 공간처럼 보이는 드넓은 베란다들이 살아보니 삶의 숨통을 틔여주고 바베큐를 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매일 펜션에 온 기분. 특히 얘들이 좋아한다. 매일 친구들 데려오는 것이 일이다. 복도 많지. 하지만 댓가도 적지 않다. 하자 투성이라 아직도 하자보수룰 하고 있고 이번 겨울 내내 추위에 떨었고 12월에는 동파가 되어 집안에 물난리가 나기도 했다. 수리하러 온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하면 그래도 이런집에서 살아봤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하니 더 이상의 불평은 복에 겨워하는 소리일 뿐인 셈이다.
- 7월에 그러고 보니 작년 7월에는 워낙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일단 얘들을 데리고 먼저 미국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던 아내가 인사차 들린 방사선과 선생의 검진 선물을 받는 과정에서 갑상선에 암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워낙 크기가 작아서 1년쯤 있다가 치료해도 괜찮다고 하는데 암인걸 알고 치료를 연기할 수 있는 강심장으로 가진 사람을 아마 없을 것이다. 결국은 수술을 받았다. 수술직후에는 hypocalcemia때문에 마비증상도 오고 목소리도 안나오고 괜찮을 것이라는 집도의의 설명이 있긴 했지만 회복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초한날을 여러날 보내야 했다. 결국 미국 체류계획은 취소되고(보험도도 받고 그 이후에 터진 경제위기를 보면서 전화위복의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졸지에 암투병환자의 남편이 되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조기검진의 문제점을 지적한 '알권리 모를자유'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 12월에 7년동안 타던 싼타페(우람이)가 또 퍼졌다. 몇달 전부터 계속 차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실행을 못하고 있던 터여서 일단 팔아버리기로 했다. 중고차상에 450만원에 팔았다. 팔고난 다음날 주차장에 더이상 우람이가 없는 것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스웨덴에서 지하철 판넬에 있는 광고를 보고 필어 꽂혀서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SUV를 과감하게  구입하였지만 대기오염을 하던 사람이 디젤차를 몰고다닌다고 해서 알게모르게 눈총도 많이 받았다. 언제부터가는 차 크기에 비해 힘이 너무 딸려서 이게 고철덩어리가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여기저기 고장이 나서 수리비로만 수백만원이 든 애물단지 였는데. 그래도 애들의 성장시기 전국 방방곡곡을 함께 누빈에 우리 가족과  한 식구였다(이제는 더 이상 애들이 부모와는 어딜 가려고 하지 않으니 아마 가장 많은 추억을 가진 전설이 될 것 같다). 새차의 선택기준은 작지만 힘이 좋고, 연비가 좋은차로 했는데 가격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독일차들이 대상이 되었다. 그야말고 장고 끝에 연말에 폭스바겐파사트 세일이 있어서 구입을 했다. 힘좋고 연비 좋아서 대만족이지만 스포츠 버전이라 서스펜젼이 딱딱해서  타고나면 울렁우렁하고 아직도 수입차에 대한 시선이 있어서 마음대로 몰고다니기가 편치는 않다. 왜 나는 모든면에서 편안한 소나타가 같은 차를 사지 못하는 걸까?
- 12월에 산업의학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태안 환경보건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정우철이 청첩장을 들고 와서 주례를 서 달라고 한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관계가 관계인지라 나몰라라 하지는 않고 주례를 구해주겠다고 했다. 일번으로는 부원장님에게 부탁을 했더니 차라리 결혼식에서 노래를 부르라면 부를지언정 주례는 못하겠다고 하신다. 다음에 학장님. 역시 펄쩍 뛰신다. 그다음은 정우철과는 전혀 모르지만 주례를 잘 서주시는 원로 교수들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데. 정우철이 다시 한번 직접해주면 안되겠냐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전해 모르는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잘 아는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당시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아버지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그냥 짧게 하라고 하시면서 친구분의 예를 들어주시는데  편찮으신 분이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오늘은 날씨도 춥고하니 주례사를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있던 어머니도 나도 크게 웃었다. 전공의도 없는 내 현실을 생각하면 내가 의미있게 주례를 설수있는 기회도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주례사를 직접 쓰고 딸들 앞에서 예행연습도 하고 시간도 재봤다. 얼추 4분정도(주례사는 블로그에 올렸음). 다행히 큰 실수없이 마무리했고 하고 나니 제법 잘했다는 얘기를 몇군데서 들었다. 같이 간 아내는 신나서 사진찍고 난리가 났다. 끝나고 천안에서 가장 맛있게 하는 집에서 함께 스파게티를 먹었다.

작년에 일어났던 주요한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니 얼추 8개인데 그중 이사말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아마 작년 수준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올해 꼭 하고 싶은 일은 적어보면
- 진화의학에 대한 공부를 해서 기본지식을 갖춘다(마침 예과 생물학 강의에 진화부분을 맡아서 하기로 했으니 기회가 좋기도 하다)
-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운다(집안 공안에 인라인 스케이트장이 있는데 타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3개월 정도 강습을 받으면 그럭저럭 탄다고 한다.) 몸에 딱 달라붓는 옷을 입고 따는 모습이 정말 가슴을 설레게 한다. 스킨스쿠버를 같이 하자는 사람도 있고 아내와 춤도 춰야 하지만 우선 순위는 인라인스케이트이다.

by 카이로스 | 2009/02/09 21:44 | 일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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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CEscher at 2009/02/16 10:29
저도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08년 10대 사건을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저는 예상 혹은 계획했던 일이 대부분이지만, 그 일들이 매우 임팩트가 큰 일들이어서 잘 정리될지 모르겠습니다.

진화의학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계시는군요. 최재천 교수가 이대로 옮기면서 더이상 진화의학 쪽으로 연구 혹은 집필을 안하시는 듯해서 아쉽습니다. 예과에서 진화의학 강의하실 때 독실한 기독교인 학생이 어필할 내용에 대해 나름 준비하셔야 할 듯합니다. ㅎㅎ

전공의 시절에 기초연구동 5층에서 밤늦게 인라인 타다가 교수님한테 걸려서 혼난 기억이 납니다. 기초연구동 대리석 바닥이 미끌미끌하여 잘 굴러가거든요. ^^;;;
Commented by 카이로스 at 2009/02/16 10:50
진화의학은 계속 관심은 있는데 시작을 하기가 어렵네요. 마치 바둑에서 저기에 둬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더 급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두다보면 미처 손이 안가는 것처럼. 바둑에서 목전에 중요한 것을 쫒아가다가 중요한 곳을 놓치는 것이 대개 하수가 하는 짓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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