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복수' 서평

의학의 한계는 중요한 책이다. 서문은 전체 책의 개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리히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현 시대의 언어, 신화, 의식, 법 등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를 추적하는 그의 기념비적 계획의 일부로서 후기 산업사회에 맞는 대안 모델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대단한 일에 그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으며 의학의 한계는 의학이 우리사회에 미친 파괴적 영향에 대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치료는-대안 모드-우리로 하여금 건강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학교없는 사회에서 예고하고 성장을 멈춰라(Tools for Conviviality)’에서 제기한 주제들의 확장으로서 건강이 점차로 희소화되고 있는 상품으로 정의되고 있다. 의학에서 신뢰의 위기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기관의 위기와 동일시되고 있다.

일리히는 우리 모두의 점증하는 의심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그 힘을 얻고 있는 컬트(cult) 운동의 배후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고 자전거를 찬양하면서 제트비행기로 맞출 수 있는 일정을 소화하고 수년 동안 네 권의 혁명적인 책을 쓴 것은 존경과 의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모든 패션과 마찬가지고 아이디어에서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 어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토인비가 그를 파악한데로)와 마찬가지로 일리히도 많은 해석과 동시에 진지하고 비판적인 청취가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책의 언어가 개인적이고 때로는 독특하기 때문에 두가지 모두 쉽지가 않다. 한편으로는 일리히는 의학지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과 지적인 틀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직관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도록 프로그램할 수 있는 스스로 강화하는 기관의 부정적 피드백 루프로 의학의 복수가 제시되고 있다. 익숙한 임상적 의원성(clinical iatrogenesis)은 산업적으로 결합을 간직하고 동시에 환자역할을 기하급수적으로 잉태시켜 병든 사회를 강화시키는 사회적 의원성(social iatrogenesis)으로 아주 적절하게 확장되고 있다. 또다른 확장은 구조적 의원성인데 이는 고통에 대한 건강한 반응이 지속적으로 마비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법적 단어구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응 노력을 필요하다.

그런 노력은 분명히 가치가 있고 비록 책의 첫 문장이 의료기관이 건강에 주요한 위협이 되고 있다..... 부유한 국가에서 의학의 식민화는 병들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되어 있지만 이 책 자체는 공격적인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논리학자라기 보다는 선생의 모습인 한 천재에 의한 지적인 자극에 가깝다. 첫 세 챕터의 제목은-현대의학의 유행(대부분이 환상인 의학의 효과에 대한 섹션), 삶의 의료화(기대의 의료화에 대한 섹션, 모두 해로운), 과잉 산업화 사회의 부산물로서 의료화(모두 파괴적인)- 우리의 의료에 대한 기계적 철학을 향한 포도탄의 연발사격 같이 보인다. 그러나 과장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강력한 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일관성 없는 표현이나 일부 명백한 오류에 대해 까다롭게 비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미 들어났듯이 이 책에서 의료 자체가 진짜 타켓은 아니고 단지 다음의 논제를 위한 셋팅인 것이다. “모든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가 현재의 건강 개념을 결정그리고 사람들의 안녕은 고통, 장애,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한 개인의 책임성을 가정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해서 증가따라서 고통, 병듦, 죽음은 비극적이게도 삶의 질에 덜 기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가 의학의 복수이다. 이것이 일리히 자신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인식과 함께 신화와 도상학을 바탕으로 하는 책의 웅장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종합의 배경이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들을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도전에 대한 그의 직관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진정으로 일리히가 걱정한 것 그리고 그가 우리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병원병동으로 변한 세상에서 마취되고 무능력하고 외로운 생존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그의 철학은 정신의학자 랭(Laing), 정신병리학자 사스(Szasz), 그리고 철학자 푸코(Foucault), 그리고 본능적으로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많은 학자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일리히가 영향이 큰 이유는 우리의 점증하는 의심에 초점을 제공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걱정시키는 것은 이런 새로운 통찰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것과 일리히가 제시하는 대안-의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과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남을 돌볼 권리에 대한 위협이다.

 

The Lancet, December 21, 1974

 

by 카이로스 | 2017/10/10 22:57 | 이반 일리히 | 트랙백 | 덧글(0)

자율주행차와 공중보건학 그리고 윤리적 문제

자율주행차와 공중보건학 그리고 운리적 문제

안전벨트, 에어백과 같은 자동차 안전장치가 강화되면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계속 줄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마도 자율주행차는 가장 획기적으로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과 사망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차는 운전과정에서 교통사고 사망의 94%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실수를 제거함으로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90% 가량 줄일 수 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전체 사망자 수의 2.1%5,700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5,000명 이상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니 자율주행차는 어떤 공중보건 조치보다도 강력하고 효과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의 분류는 SAE(Society for Automotive Engineers) International5단계 분류가 일반적인데. Level 0(no automation)는 전적으로 인간이 운전하는 것, Level 1(driver assistance)은 가끔 핸들조작, 가속, 감속 같은 특정 임무를 도와주는 것(예를 들면 크루즈 기능, 차선이탈방지 기능), Level 2(partial automation)는 시스템이 핸들조작과 가속, 감속의 임무를 수행하고 인간은 상황을 모니터하면서 나머지 기능을 담당하는 것(운전대가 스스로 돌아가기 시작 운전자는 핸들과 페달에서 손과 발을 뗄 수 있지만 시선은 전방에 두고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함,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이 여기에 해당), Level 3(conditional automation)은 시스템은 모든 운전 업무를 담당하고 상황을 모니터링도 하고 인간은 시스템이 도움을 요청할 때만 개입하는 것(운전자가 딴 짓을 할 수 있음, 구글의 자율주행기술이 여기에 해당), Level 4(high automation)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시스템이 운전을 담당하고 설령 인간이 개입요청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도 시스템이 기능을 수행하는 것, 마지막으로 level 5(full automation)에서는 모든 상황에서 시스템이 운전을 담당하는 것이다. 레벨 1,2는 인간 운전자가 주행환경을 모니터링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상위레벨과 차이가 나는데 보통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논의는 SAE level 3,4,5에 대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테슬라의 엘론머스크는 10년 후 생산되는 차 대부분은 자율주행차일 것이고 20년 후에는 차에서 운전대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자율주행차에서 공중보건의 윤리가 적용되는 지점은 일차적으로 개인 사업자(자율주행차 제조업체)가 혁신적 개발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공중의 건강을 지켜야하는 정부와 책임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자율주행차 자체는 교통사고를 크게 줄임으로서 안전에 기여하지만 그로인해 보다 건강한 이동수단인 자전거나 걷기를 덜 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자율주행차에 투자하느라고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가 감소할 수도 있다. 또한 안전한 자율주행차를 이용할 수 있는 도시의 부유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에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자율주행차는 이용자의 이해(원하는 목적지에 빨리, 싸게,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와 사회의 이해(길은 모든 이용자-자율주행차 승객 뿐아니라 일반 운전자 승객, 자전거, 보행자-에게 안전해야 함) 사이에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이슈를 이해하는 데 강제선택(foced-choice) 상황을 가정해서 판단하는게 도움이 되는데 많이 활용되는 방법은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이다. 트롤리 문제는 철학자인 Philippa Foot1967년 처음 제기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인데 이후 다른 철학자나 인지과학자들이 많이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트롤리 문제에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가장 간단한 형태는 철로에서 트롤리의 진행방향에 5명의 사람이 묶여있다. 당신 옆에는 트랙을 바꿀 수 있는 레버가 있는데 이것을 당기면 트롤리가 방향을 바꾸어 다른 트랙으로 가는데 이 트랙에는 한 사람이 묶여 있다. 당신이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5명이 죽고 당신이 레버를 당기면 한 사람이 죽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들어야 할 까?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승객 1명이 다치거나 보행자 여러 명이 다쳐야 하는 상황에서의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참여자들은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쪽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차량을 구입할 때는 숭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하는 차량을 선호하였다. 하지만 공평성의 측면에서 보면 보행자는 아무 잘못없는 사람인 반면 자율주행차 승객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탑승했기 때문에 약간의 위험을 더 감수하는 것이 형평에 맞을 수도 있다. 어쨌든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자율주행차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면 사람들이 자율주행차의 구입을 꺼려함으로서 보다 안전한 자율주행차의 도입이 미루어지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어린이는 노인보다 우선해서 보호해야 할 것인가? 임신한 여성은 2명으로 쳐야하는가? 죽지는 않지만 부상을 당하는 경우에 부상자수뿐 아니라 부상의 심각한 정도, 사고 확률, 부상에 따른 삶의 질까지 알고리즘이 고려해야 하는가? 이런 복잡한 윤리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율주행차 개발단계에서부터 공중보건학의 가치에 부합하는 형태로 알고리즘이 만들어져서 자율주행차 설계에 반영되어야 한다.

공중보건학자들은 자율주행차를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혁신으로 환영해야 하고 기술혁신에 발맞추어 자율주행차 운행과 관련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나갈 책임이 있는데 특히 다음의 4가지 영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1) 자율주행차 개발돤계에서부터 강제-선택 알고리즘에 대한 투명하고 협조적인 토론 옹호, 2) 일반 대중들이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공중보건 및 윤리적 문제를 인식하도록 홍보, 3) 자율주행차의 운행 시기와 방법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 4)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합리적이고 윤리적으로 정당한 규정들이 개발되도록 함.

 

[트롤리 문제 실습]

문제 1. 각각의 상황에서 자율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가?

문제 2. 어떤 알고리즘을 탑재한 차를 사겠는가?

A: 여러 명의 횡단보도 보행자 vs 한 명의 인도 보행자

B: 한 명의 인도 보행자 vs 운전자

C: 운전자 vs 여러 명의 횡단보도 보행자


 




by 카이로스 | 2017/10/09 09:54 | 일반 | 트랙백 | 덧글(4)

먹거리 위험사회의 생존전략

살충제가 들어 있어 먹기에 부적합한 달걀이 생산·유통되어 소비된 살충제 달걀 파동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달걀은 그 동안 영양소가 풍부한 완전식품으로 인식되어 대부분이 국민이 자주 먹는 식품이었던지라 충격이 특히 컸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미숙한 업무처리는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달걀 생산 농장 전수를 대상으로 살충제 검사를 해고 부적합 달걀을 걸러내면서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가고 있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비슷한 문제가 다른 식품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먹거리 안전은 단발성 이슈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살충제 달걀 사건은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식품 안전 문제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살충제로 오염된 달걀이라고 해서 달걀 모양이 이상하거나 냄새가 나거나 맛이 달라진 게 아니다. 즉 우리 감각으로는 살충제 오염 여부를 전혀 지각할 수 없다. 살충제 달걀을 먹고 탈이 난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살충제 오염 달걀로 인한 피해는 피해자 대신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로 표현되기 때문에 역시 우리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이런 형태의 위험에 대해서 일찍이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통찰한 바가 있다. 그는 과거 위험이 위생학 기술이 부족해서(예를 들면 상한 달걀) 나타나는 반면에 오늘 날 위험은 산업화된 대량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과학지식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험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위험에 대한 정의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은 전문가의 손에 있게 되지만 전문가들만의 과학적 합리성에 의존해서는 위험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울리히 벡의 주장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과학적 의사결정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준치와 비교해서 위험의 크기를 평가하고 관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자체를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먹거리 위험사회에서 안전을 지키는 전략의 핵심은 먹거리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먹는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먹거리를 자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상자 화분 하나 정도는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다. 실제로 필자는 상자 화분 하나에 고추 세 주를 키워서 집에서 필요한 고추는 자급을 하고 있다. 전체 먹거리의 극히 일부지만 100% 안전이 보장된 먹거리를 직접 생산해서 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먹거리가 마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새롭게 열리는 고추를 보면서 생명의 힘을 느끼기도 한다.

먹거리를 구입할 때 생산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을 겪으면서 계란에 난각 번호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산 농장을 알 수 있는 먹거리를 구입하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통 단계가 짧을수록 식품의 신선도와 안전도가 높아지게 된다. 구체적인 방법은 생활협동조합 매장이나 로컬 푸드 매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곳의 먹거리 가격이 일반 마트보다 높을 수는 있지만 적정가격이 보장되어야 안전한 먹거리가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먹거리 위험의 근본원인이 낮은 가격에 대량생산하는 산업구조에 있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집단적으로 이뤄진다면 먹거리 생산환경 자체가 지금보다 안전한 쪽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좋은 정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좋은 정부의 의미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선의와 동시에 유능함을 갖춘 정부를 말한다. 살충제 달걀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정부의 역할에 많은 아쉬움을 갖게 된다. 이미 작년에 국정감사에서 살충제 달걀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과연 정부가 선의가 있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정부부처간의 혼선, 정보의 적시 공개 실패, 위해성 소통 실패 등 위기대응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정부가 국민의 식탁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정책을 능숙하게 펼치도록 지속적으로 촉구할 필요가 있다.

결국 먹거리 안전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by 카이로스 | 2017/09/14 21:58 | 일반 | 트랙백 | 덧글(1)

살충제 계란, 식약처가 위해소통에 실패한 이유



살충제 계란 파동은 살충제가 들어있어 먹기에 부적합한 달걀이 생산·유통되어 소비된 사건인데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달걀에서 비펜트린 등 몇 가지 농약이 기준치를 초과하여 검출되고 사용이 허가되어있지 않은 피프로닐이 검출된 사건이다. 지난 814일 달걀에서 살충제 오염이 처음 확인된 후 정부에서는 전국에 천 곳이 넘는 계란 생산 농장 전수를 조사하여 부적합한 달걀을 생산한 농장의 달걀 출하를 금지시켰고 이미 출하된 달걀은 최대한 회수하였다. 이 모든 일을 불과 일주일 사이에 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행정력이 아닐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항생제 검사 항목이 누락되거나 살충제 검출 농장이 몇 차례 바뀌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잘잘못이 아니고 살충제 달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미 작년에 있었음에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정부의 직무유기에 있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부의 신속한 개입으로 달걀의 살충제 오염 문제는 관리가 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충제에 오염된 달걀 중에 회수 되지 않고 소비된 달걀로 인한 건강 문제는 없을까? 예전부터 오랫동안 먹었던 달걀도 살충제에 오염되었을 수 있는데 이로 인한 건강문제는 없을까? 이런 우려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답변을 내놓는 과정을 위해평가라고 한다. 식약처는 821일 농림부와 함께 위해평가 결과를 브리핑하였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피프로닐의 경우 달걀을 아주 많이 먹는 사람(하루 3개 이상)이 현재 까지 검출된 농도 중 가장 높은 농도로 오염된 달걀(0.0763 ppm)을 먹었다 하더라도 급성독성참고치(급성 독성을 우려해야 하는 살충제의 양)10% 미만이고 몸에 들어온 살충제는 신속하게 배출되기 때문에 독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 운 나쁘게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달걀 중 가장 살충제에 많이 오염된 것을 먹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가장 높은 농도로 오염된 달걀을 매일 섭취한다고 가정할 때의 살충제 섭취량은 일일섭취허용량(평생동안 식품을 통해 유해물질에 노출되어도 건강의 문제를 나타내지 않는 농도)20% 이내로 이것은 그 동안 오염된 달걀을 매일 2.6개씩 먹었더라도 건강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와 같이 위해평가한 결과를 국민들이 잘 이해하도록 전달하는 것이 위해소통인데 브리핑 이후의 과정을 보면 식약처의 위해소통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브리핑 직후에 의사협회나 환경보건학회와 같은 전문가 단체들이 식약처 발표를 반박하는 성명을 낸 것이 뼈아팠다. 특히 국무총리가 살충제 달걀 파동을 예로 들면서 공직자에게는 설명의 의무가 있는데 식약처가 그 의무를 충실히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식약처의 위해소통 노력에 실패라는 도장을 찍은 셈이 되었다.

전문가 단체의 문제제기는 주로 만성영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 문제가 된 살충제로 인해 급성독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식약처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만성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은데 식약처의 결론이 너무 섣부르다는 것이다. 장기 섭취에 의한 만성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고노출군을 대상으로 피해조사도 하고 관리대책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 단체의 주장이다.

만성영향은 주로 암 발병이 문제가 된다. 피프리닐의 일일섭취허용량도 암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 동물실험 결과를 통해 구해졌다. 피프리닐이 인간에게 암을 포함한 만성영향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바 없다. 미국 환경보호청에서는 동물실험에서 갑상선암의 증가가 관찰된다는 결과를 토대로 피프리닐의 발암성을 발암가능 물질인 “C"로 분류하였다. 동물실험에서는 암을 일으킨다는 일부 제한된 결과가 있지만 인간에서는 발암성에 대한 증거가 없는 경우이다. 인간에게 발암성이 확인된 "A" 그룹, 발암성의 가능성이 높은 ”B" 그룹과 대비해볼 때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수는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발암물질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C" 그룹에 해당하는 물질을 일일섭취허용량의 20% 이내로 섭취하였으니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식약처의 입장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적용하면 일일섭취허용량을 훨씬 초과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일일섭취허용량이 평생 섭취해도 괜찮은 양을 의미하기 때문에 연령을 제한해서 평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다(평생을 영유아로 지내는 사람은 없으니까).

식약처와 전문가 단체가 위해평가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충분히 논의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기관리의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할 일과 학술적인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추진할 일을 논의해서 일치된 메시지를 냈더라면 국민들이 지금보다는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국무총리가 식약처의 설명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부분은 식약처에서는 가장 부적합한 달걀도 2.6개까지는 평생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보다 안전한 계란은 왜 전량폐기 하느냐는 것이다. 기자 출신 총리답게 일반 국민이 가졌을법한 궁금증을 제기한 것이다. 위해평가 결과는 일일섭취허용량과 같은 기준치와 비교하여 제시되는데 일반 국민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원활한 위해소통을 위해 몇 개까지 먹어도 안전한지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사실 이번에 급성독성의 경우 126개까지 먹어도 된다고 한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긴 하다. 하루에 달걀을 그렇게 많이 먹으면 살충제에 관계없이 배불러 죽을테니). 그런데 이번에는 마치 식약처가 살충제로 오염된 달걀을 먹어도 된다고 발표한 것처럼 잘못 전달이 된 것이다. 당연히 부적합 달걀은 개수에 관계없이 무조건 먹지 말아야 하고(정부가 생산·유통되지 않게 관리해야 하고) 위해평가 결과(2.6개 까지는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고 하는)는 과거에 먹은 달걀로 인한 건강영향을 가늠하고 필요한 대책을 수립하는데 활용하면 되는 것인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을 통해 다시 확인된 사실은 이제는 위해소통을 전문적인 영역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약처의 부서는 정책 대상 물질 별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식품은 식품안전정책국, 의약품은 의약품안전국, 화장품이나 한약은 바이오생약국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해당부서들은 자신들의 업무 대상 물질을 관리하는데 많은 경험이 있지만 국민과 소통하는데 필요한 전문성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소 달걀의 안전은 식품안전정책국에서 관장하더라도 살충제 달걀 파동 같은 문제는 소통을 담당하는 전문부서가 전면에 나서서 식품안전 부서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미숙한 소통으로 인해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시키는 불상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실 식약처에는 위해 예방 정책을 세우고 소통을 하기위한 조직인 소비자위해예방국이 있지만 이번 파동을 해결하는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식약처 내의 가장 선임국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늦게 생긴 조직이라 기존의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지 않은 틈새업무를 담당할 뿐 정작 위해소통이 필요한 때에는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크게 논란이 되었던 백수오는 건강기능식품 부서에서 대응하고 있고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생리대는 의약외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맡고 있다. 모두다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한 문제지만 정작 소통을 담당하는 부서는 배제되어 매번 소통에 관한한은 초보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국민을 상대하게 된다. 앞으로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식품과 의약품 관련 문제는 소통 전담 부서가 전면에 나서게 해야 한다. 국민 소통과 관련된 모든 노하우를 식약처의 소통 담당 부서에 축적시켜야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때 능숙하고 유능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래야 국민들이 식의약 분야에서도 새정부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by 카이로스 | 2017/08/28 17:18 | 환경의학 | 트랙백 | 덧글(0)

진실은....

뉴욕타임즈가 뉴욕타임즈에 실은 전면광고인데 트럼프 시대 미국의 언론 환경을 잘 보여주네요.


the truth is hard 진실은 견고하다.

the truth is hidden 진실은 숨겨있다.

the truth must be pursued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the truth is hard to hear 진실은 알기 어렵다.

the truth is rarely simple 진실은 간단하지 않다.

the truth isn't so obvious 진실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the truth is necessary 진실은 필요하다.

the truth can't be glossed over 진실은 얼버무려질 수 없다.

the truth has no agenda 진실에는 아젠다가 없다.

the truth can't be manufactured 진실은 만들어질 수 없다.

the truth doesn't take sides 진실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the truth isn't red or blue 진실은 진보나 보수가 아니다.

the truth is hard to accept 진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the truth pulls no punches 진실은 누구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the truth is powerful 진실은 강력하다.

the truth is under attack 진실은 공격받는다.

the truth is worth defending 진실은 지켜낼 가치가 있다.

the truth requires taking a stand 진실은 태도를 명확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the truth is more important now than ever 진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중요하다.

 

by 카이로스 | 2017/07/17 15:07 | 일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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