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의사를 찾을 때

  의사들이 비행기를 탈 때 마다 느끼는 작은 스트레스 중의 하나는 비행기에서 혹시 의사를 찾는 방송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이다. 가끔 비행기에서 발생한 응급환자가 마침 같이 동승한 의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는 소식이 보도되는데 이런 뉴스를 본 대부분의 의사가 자신에게도 이런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마땅히 의사라면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살려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 할까봐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나는 작년 남미여행 때 비행기를 열다섯 번 쯤 타면서 이 문제를 정리했다. 비행기에서 닥터를 찾는 것은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응급상황에서 도움을 줄 사람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졌지만 평소에 잘 안 들리는 영어 기내 방송 중에도 닥터를 찾는다는 내용 만은 또렷하게 들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 미국의사협회지 최근호에 “Is there a Doctor on the Plane?"이라는 제목으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다.

 

  비행기에서 의사를 찾는 가장 흔한 이유는 어지럼증, 의식상실, 구역질, 구토, 심장 또는 호흡기 증상 등이다. 문헌에 따르면 가장 흔한 것은 실신 또는 거의실신으로 37% 가량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호흡기증상으로 12% 정도, 그리고 구토, 가슴통증 등이 그 다음이다. 이런 증상들은 비행기가 높은 고도를 날기 때문에 산소포화도가 낮아져서 생길 수 있다. 평소에는 산소포화도가 99-100% 이던 것이 92-95%까지 내려가는데 평소에 심장질환이나 호흡기질환이 있는 사람은 증상이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비행기 안이 건조한 것도 탈수를 촉진시키고 점막을 마르게 해서 천식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악화시킬 수 있다.

  비행기 안에 있는 구급조치를 할 수 있는 용품으로는 (국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응급처치도구, 산소, 산소마스크, 자동제세동기, 청진기, 혈압계, 주사기, 500cc 생리식염수 등이 있고 약품으로는 타이레놀, 베나드릴, 아스피린, 아트로핀, 알부테롤, D50 엠플, 에피네프린, 리도케인, 니트로글리세린 등이 있다.

  일부 항공사(ANA, 루프트한자, 터키항공 등)는 탑승 시에 의사를 등록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이렇게 등록을 하면 비행기 안에 있는 의료용품에 대한 정보를 미리 받을 수 있고 응급 상황에 굳이 방송할 필요 없이 바로 연락을 받을 수 있다. 응급처치에 자신이 있는 의사라면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비행기 안에서 응급상황은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행기 탑승이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고 노인들과 질병이 있는 사람들도 비행기 탑승을 꺼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2023년까지는 비행기 탑승객의 절반이 50 대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사들이 응급상황 발생 시에 나서길 꺼려하는 이유로는 1) 왜 의사를 찾는 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2) 긴 여행으로 지쳐있다. 3) 이미 술을 마셔서 나서기가 어렵다. 4)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뭔가 잘못되었을 때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닌지 두렵다.

  미국 법률에는 전반적으로 태만했거나(너무 지쳐있거나, 수면제를 먹었거나, 술을 마셔서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 등) 고의적으로 잘못한 게 아니라면 비행 중에 제공한 의료조치로 처벌받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테크니션 등 모든 의료인에 해당된다. 물론 이것은 모든 항공사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응급환자 때문에 비행기를 회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사가 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 상태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데, 어떤 종류의 응급상황인지, 착륙 가능한 공항이 인근에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예를 들어 막 출산을 하려는 산모가 있는데 인근 공항에 출산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면 회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회항에 대한 최종판단은 의사가 아니라 기장이 하게 된다. 기장이 비행기 안에 의사 뿐 아니라 지상의 의사와도 교신 할 수가 있어서 보통의 지상의 의사(이런 경험이 많은)의 의견을 들어 최종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비행기에서 의사를 찾았을 때 의사라고 나타난 사람은 당연히 의사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미연방항공청(FAA)에서는 승무원이 의사면허를 확인하면 더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도와주려고 나타났는데 의사면허증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다(특히 의사 같이 생기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 더욱이). 그래서 사명감에 불타는 의사라면 비행기 탈 때마다 영문의사면허증을 갖고 다니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JAMA. 2018;320(3):221-223. doi:10.1001/jama.2018.6654

 

by 카이로스 | 2018/07/22 22:29 | 환경의학 | 트랙백 | 덧글(0)

최악의 여행에서 경험한 의외의 즐거움(대한항공으로 나가서 아시아나항공으로 돌아온 슬로베니아 여행)

  얼떨결에 전자파 연구과제에 관여하게 되면서 전자파의 건강영향에 대한 최신지견을 습득할 필요가 생겨 생체 전자파 국제학회인 BioEm2018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런데 학회 장소가 슬로베니아의 피란이었다. 피란으로 가는 비행기편을 열심히 찾아봤는데 피란에는 공항이 없고 인근 대도시로 가서 차편을 이용해 가야하는데 일단 슬로베니아 수도인 류블리냐를 통해 들어가기로 했다. 갈 때는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가고 올 때는 취리히로 나와서 귀국하는 대한항공편이었다. 비행기는 예약했지만 피란, 류블리냐 모두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였고 심지어 슬로베니아라는 나라 이름도 들어보기는 했지만 어디쯤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본 결과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 근처에 있는 나라로 크기는 전라남북도 합친 것 만하고 인구는 200만명이 조금 넘는데 최근에 흑기사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소개되면서 한국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인상적인 것은 나라이름(SLOVEnia)에 사랑(love)이 들어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워낙 생소한 지역인지라 류블리냐 숙소로 한인민박을 검색했더니 2개가 검색이 되는데 그중 나이든 사람이 갈 만한 곳을 골라서 예약했고 공항픽업서비스도 신청했다.

  민박 주인은 슬로베니아 남성과 결혼한 한인 여성인데 남편은 조종사 출신으로 아시아나 항공에도 근무한 경험이 있어 둘이 한국에서 만나서 결혼을 했다고 한다. 도착한 날 밤에는 와인으로 웰컴파티를 열어줬고 다음날 일일투워를 신청했더니 두 내외뿐 아니라 강아지까지 포함한 온가족이 폭스바겐 골프에 함께 타고 흑기사로 유명해진 블레드 성과 호수를 보고 저녁은 세르비아 음식을 하는 식당에서 현지식을 맛있게 먹었다. 블레드 호수에는 티토의 별장이 있고 이 별장에 북한의 김일성도 묶었다고 한다. 티토는 지금은 해체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대통령로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 양쪽의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양쪽의 지원을 받아 나라를 발전시켰는데 티토가 사망한 이후에는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유고연방도 해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중 슬로베니아(유고 연방 국가 중 가장 잘살던) 제일 먼저 독립선언을 하고 한 열흘 정도 간단히 전쟁한 후에 독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는 인종청소 등 최악의 분쟁을 겪기도 했다.

  민박 주인과 잘 사귄 김에 그 다음날 피란까지 가는 길도 같이하게 되었다. 오전에는 류블리냐 시내 관광을 했는데 도시 이름(류블리냐가 사랑을 의미한다고 한다)처럼 아주 사랑스런 도시였다. 아드리아해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피란으로 가는 길에는 포스토니아라는 유럽 최고의 동굴이 있는데 기차를 타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한시간 쯤 걷는 코스인데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그 인근에는 프레드야마라는 동굴 절벽에 세운 성이 있는데 이것 역시 장관이었다. 피란까지 가는 길에 본 슬로베니아는 산과 숲이 많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인데 집들과 차를 보면 생활도 풍족해보였다(국민소득이 3만불이 좀 안된다고 한다.) 물가가 비싸지 않고(전반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느낌) 바다가 있는 스위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피란도 참 멋진 항구도시였다. 예전부터 소금을 만들어 번성한 도시인데 아름다운 풍경과 풍부한 먹거리로 꼭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BioEM300명 정도가 참가한 소규모 학회인데 특이한 것은 미국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내가 다닌 대부분의 국제학회는 미국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프로그램도 주도적인데 BioEM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다. 참석자 수로 따져보면 프랑스, 미국, 일본, 한국의 순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회에서는 미국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은 학문의 수준이 높기도 하지만 언어에서 장점도 한 목 한다. 사실 유럽 사람들도 영어를 잘하긴 하지만 그들도 제2외국어인지라 그냥 좀 더 잘하고 못하고 차이로 느껴지지만 미국 사람과 영어로 얘기하면 마치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같은 느낌이 든다. 영어를 제2외국어 사용하는 사람들과 영어로 얘기를 할 때는 서로 잘 못 알아듯는 경우에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원어민과 얘기해서 그런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영어실력에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전자파 학회에서 미국의 역할이 미미한 이유는 미국에서는 전자파 관련 연구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자파라는 것이 수십 년의 연구에서 딱히 위험하다는 것이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찜찜하고 또 계속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지라(예를 들면 3G, 4G, 5G) 꾸준히 위해성에 대한 연구를 할 필요는 있어서 유럽이나 일본, 우리나라에서는 꾸준히 연구비는 나오고 그래서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연구를 하는 분야인데 미국에서는 위해성이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하고 연구비를 딱 끊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미국의 존재가 미미하다보니 학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느낌이 든다.

  BioEM은 공학적인 내용이 반 생물학적인 내용이 반 정도 되는데 공학적인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생물학적인 내용 특히 역학적 내용이나 과학연구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방법에 대한 세션에서는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다. 특히 생체 전자파 연구를 하는 국내 연구자들과 잘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고 같은 대학임에도 미처 잘 몰랐던 연구자를 만나서 공동연구에 대해 논의한 것도 전혀 기대하지 않은 소득이었다. 그리고 아주 좋았던 것 중 하나는 학회에서 제공하는 점심이었다. 학회장인 특급 호텔의 식당에서 새파란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매일 조식 부페 수준을 점심을 먹었다. 물론 학회 등록비가 800유로로 만만치 않았지만 어쨌던 좋은 대접을 받으며 기분이 좋다

  학회를 마치로 다시 류볼리냐 공항으로 가는 것이 숙제였는데 호텔에 셔틀이 있는지 문의하였더니 Go Opti라는 사이트에서 직접 예약을 하라고 한다. 목적지와 시간을 입력하면 내가 있는 장소에서 픽업해주는 서비스였는데 운영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매우 편리한 서비스였다. 만일 택시를 탔으면 100유로 정도를 냈어야 하는데 17유로를 냈더니 정해진 시간에 호텔로 밴이 와서 (다른 승객 3명과 함께) 공항까지 데려다준다.

류블리냐 공항에서 취리히 행 비행기를 기다릴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웠고 너무나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류볼리냐 공항은 한나라의 수도에 공항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게이트가 3-4개 있는 게 전부이다.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출발이 20분 지연된다는 안내가 떴다. 뭔가 불길한 징조였다. 취리히에서 환승시간이 한시간 남짓이었던지라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비행기에 탑승해서도 출발을 하지 않는다. 한적한 동네 공항에서 출발을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는데 취리히 공항의 기상이 나빠서 기다린다고 한다. 결국 한시간 쯤 늦게 출발하였는데 그때 까지만 서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 근거는 첫째, 늦게 출발해도 빨리 날아가면 어느정도 만회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실제로 서울에서 출발할 때도 한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는데(이때는 항로상의 중국 쪽에 비행기 혼잡해서 늦어진다고 했었다.) 도착 시간은 얼추 맞았다. 물론 한시간 남짓 비행에서 이걸 만회하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은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햇다. 두 번째는 보다 합리적인 추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취리히 공항에 기후가 나쁘다면 서울행 비행기도 출발이 지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마지막은 참 순진한 기대인데. 취리히 공항에 도착하면 항공사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뛰어가서 서울형비행기를 탑승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우리 비행기는 서울행 비행기가 출발하는 시간 쯤에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첫 번째 기대가 무너졌고 그래도 누가 어떻게 안내를 하겠지 생각하고 환승데스크로 갔더니 아무도 안내하는 사람이 없고 줄은 장난이 아니게 길다.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대한항공은 이미 출발했고(세번 째 기대가 무너진 순간) 환승데스크 줄에 서서 안내를 받으라고 한다.

  사실 원래 학회는 금요일까지 였는데 하루 먼저 귀국하는 일정을 짠 것은 토요일에 있는 큰딸의 CPA 2차 시험장에 데려다 주기 위함이었다. 수능시험도 아니고 다 커서 혼자 서울에서 사는 딸 시험장에 데려다주기 위해 학회 일정을 당겨야 하는지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순간에 함께하는게 가족이라는 생각이 그리 일정을 짰는데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환승데스크에서 두시간 쯤 기다려서 체크포인트(거기서 안내데스크까지는 다시 한시간쯤 기다려야 하는)에 가는 교통정리를 해주는 스태프가 무슨 용무냐고 묻더니 전후사정을 얘기했더니 내 용무는 이 줄이 아니고 AAS 데스트로 가라고 하는데 거기는 이미 클로즈 되어 있었다. 순간 정말 난감해졌는데 그 앞에 전화기를 들면 사람이 응대할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 누가 응답을 하는데 체크인 투로 오면 안내를 해주겠다고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체크인 투라는 사인은 없고 다시 물어물어 찾아가는데 환승지역을 벗어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문이 나온다. 여길 나가도 되는지 이러다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닌 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나가서 다시 물어보니 옆건물이라고 한다. 취리히 공항의 체크인 투는 데스크 번호가 아니라 마치 제2공항 터미널 같은 건물의 이름이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결국 내게 체크인 투로 오라고 했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참 수소문 끝에 다음날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서울로 들어가는 비행기편을 예약해 주었다. 비행편은 루프트한자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아시아나항공으로 인천으로 가는 일정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원래는 마일리지가 많은 아시아나로 업그레이드 해서 하려했는데 아시아나가 류블리냐로 연결되는 편이 없어서 대한항공으로 했는데 뜻하지 않게 아시아나를 타게 되었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비행기가 지연되어 다음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공식적으로는 delayed-misconnection) 모둔 뒷감당은 원인제공 항공사가 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내가 탔던 아드리아항공이 지연되어 비행기를 놓쳤기 때문에 같은 스타얼라이언즈에 속해 있는 루프트한자와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새로 비행기편을 만들어준 것이다. 돈을 많이 내고라도 국적기를 타는 이유는 혹시 문제가 생기면 잘 해결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는 것인데 다른 비행기로 환승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한항공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호텔 바우처, 호텔까지 왕복택시 바우처, 다음날 공항에서 점심 먹을 수 있는 바우처를 받았다. 항공사에서 준비한 차편을 이용해서 공항인근의 좋은 호텔에서 하루 묶는 것을 기대했는데 또 뭔가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택시 바우처가 문제였는데 왕복 바우처라고 하고 한 장을 줬는데 (왕복이면 2장을 줘야할텐데) 이걸 지금 기사에게 주면 내일이 보장이 안될 것 같고 반대로 내일 주겠다고 하면 기사가 못 받아드릴 것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택시 타기 전에 왕복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밤 11시 택시승강장이 그런 것을 차분히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택시 기사의 손에 끌려 택시를 탔는데 일단 바우처를 받아 챙긴다. 내일 아침에 다시 공항으로 태워줄 것을 약속받았는데 이민지 출신 택시기사가 웬지 미덥지가 않았다.

(( 다음 날 택시기사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스위스는 뭔가 신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뒤탈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호텔에 부탁해서 택시를 불렀다. 스위스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였는데 웬지 이 사람을 어제 만났더라면 약속대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호텔은 완전 시골 호텔이었다. 호텔과 같이 있는 바에는 담배연기로 가득차 있었고 바우처에는 저녁도 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늦어서 안된다고 한다. 피곤했던 지라 푹 자고 일어나기 바깥 풍경이 보이지는 그냥 평범한 스위스 동네였다. 산책 겸 길을 나섰다. 동네의 모습이 예전에 살았던 스웨덴 동네와 비슷했다. 3층 정도의 연립주택들이 녹지를 공유하는 형태였다. 동네를 지나다 보니 숲이 나온다. 40-50 미터는 족히 되 보이는 자작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마치 어디 국립공원에라도 온 느낌이다. 인생 산책이라 할 만했다. 뜻하지 않게 취리히 사람들이 사는 곳을 둘러보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만난 스위스 사람은 대번 한국에서 왔냐고 묻고는 한국이 독일을 꺽는 대단한 일을 했다가 신나서 얘기한다. 나는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피란의 호텔로비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해도 별로 마음이 조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터진 두골. 특히 손홍민의 골은 텅빈 골대에 골을 넣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어 인상적이 이었다. 같이 구경을 하던 사람 중에 다운증후군 아이가 한국이 이기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뭔가 맥락을 알고 좋아하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날 피란 산책 중에 만난 스웨덴 관광객과 축구얘기를 했고 저녁 식당에서 한국에서 왔냐고 축구얘기를 한다. 그러고보면 코리아가 월드컵에서 큰 족적을 남긴 적이 몇 번이 있는데 첫 번째는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꺽고 8강에 진출한 것인데 당시 남한 월드컵 본선 진출이 국민적 염원의 상태였다. 두 번째는 2002년 월드컵인데 그때 우리나라가 폴란드, 포르투강,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국가를 차례로 꺽고 4강 진출이라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이뤘지만 유럽 국가에서 실력이 없는데도 홈팀 어드벤티지를 이용한 승리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독일전 승리는 아마 독일 빼고는 전세계인 모두가 좋아하는 것 같다. 독일이 항상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다 보니 다른 유럽국가에서 셈통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월드컵 역사를 보면 독일이 최고의 팀에게 돌아갈 영광을 가로챘다는 느낌이 있는데 예를들면 50년대 푸스카스가 이끈 헝가리팀이나 70년대 토탈사커의 원조 요한 크루이프가 이끈 네덜란드 팀이 월드컵 트로피를 가져가야 마땅했는데 결과적으로 우승트로피는 독일이 가져가 버렸다.))

  다시 공항에 가서 비행기 티켓을 받고 체크인한 짐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어제 강풍이 부는 바람에 비행스케줄이 엉망진청이 되어 아직도 짐을 분류하는 중이라고 한다. 잘하면 같이 갈수도 있고 아니면 하루 이틀 늦게 도착할 수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렇게 북적대던 환승데스크에 한두 사람이 서 있을 분이다. 혼자만 당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취리히 공항에서는 탑승까지 4시간이 남아 있었다. 면세점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기념할만한 쇼핑을 하기로 했는데 기내용 여행가방을 하나 샀다. 평소 여행 패턴은 짐가방 하나를 부치고 배낭에 노트북과 책을 넣어 다니는 스타일인데 언제 부터가 배낭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짐을 부치는 대신에 핸드캐리를 하고 노트북도 넣을 수 있는 가방으로 해서 보통 가방의 두 배쯤 되는 거금을 들여 구입했다. 평소 같으면 비싸서 못 샀을 테인에 나름의 합리적 이유도 있고 이번같이 특별한 일이 있으면 특별하게 소비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쨌든 가방을 사서 노트북 배낭을 넣어 끌고 다니니기가 한결 수월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착해서 아시아나 게인트로 가서 세 가지 질문을 했다. 비즈니스로 업그레드 할 수 있는 지(빈 자리가 없어서 안된다. 아 빈자리가 있으면 보딩패스 받고도 나중에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모양이다) 두 번째는 아시아나 마일리지 입력(순순히 해준다. 대하항공 티켓으로 아시아나 마일리지 입력할 줄이야), 마지막으로 짐이 왔는지(이 비행기에는 안 실렸다고 한다. 앞으로는 짐을 부치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출국하고 귀국하는 비행기 편만 바뀐 것이 아니라 여행가방도 바뀐 셈이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면서 기종을 확인해보니 A380이다. 사실 나는 가장 큰 비행기인 A380을 한번 타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기대를 했는데 대한항공을 예약하면서 가는 편과 오는 편 모두 A380이 아닌 것을 알고 실망했는데 정말 뜻하지 않게 A380을 탈줄이야. 타고 보니 특이한 것은 별로 없었다. 4명 않는 자리에 가운데 좌석이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마무리가 좋아서 좋은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고 보너스로 이 글도 얻게 되었다.     


((다시 슬로베니아 여행을 한다면 최상의 여행경로는 아마도 아시아나 베니스 직항을 타고 가서 Go Opti를 이용하여 슬로베니아 내 목적지로 가는게 아닐까 싶다)

      

by 카이로스 | 2018/07/01 11:50 | 여행 | 트랙백 | 덧글(0)

영화 '그날 바다' 후기

그날 바다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물론 큰 감동을 주는 픽션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앵커를 내려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가설을 과학적 근거를 이용해서 믿게 만드는 넌픽션이라는 점에서다.

현재까지 정부의 공식적인 침몰원인 발표는 인천에서 출발한 배가 순조롭게 운항하다가 사고해역에서 미숙한 조타수가 큰 각도로 핸들을 틀었는데 화물과적으로 배의 복원성이 낮아진 상태에서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침몰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침몰직전에 사람이 튕겨나갈 정도의 큰 충격이 있었다는 생존자의 증언이 있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커다란 외력이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선발자동식별장치(AIS)의 원시자료를 가지고 추정해보면 배가 알려진 것보다 사고해역의 섬(병풍도)에 근접해서 지그재그로 운항하였고 항적 경로가 해저지도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앵커를 해저에 내려 침몰시킨 것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것을 숨기기 위해 AIS자료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세월호 침몰원인을 찾아가는 방식은 논리적 추론 방법 중에 귀추법(abductive reasoning) 또는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에 속한다. 이 추론은 어떤 현상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해서 이 현상에 대한 가장 그럴듯하고 가장 간단한 설명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어떤 놀라운 현상 P가 관찰된다.

2. 만일 가설 H가 참이라면 P는 당연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3. 따라서 가설 H가 참이라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있다.

이 영화에서 과학적 근거로 제시하는 AIS 원시자료 분석결과, 배의 이상한 운행에 대한 생존자 증언, 차량 블랙박스 영상, 침몰당시의 컨테이너 위치, 녹 슬은 왼쪽 앵커 등이 P에 해당하고 H앵커를 내려 해저에 박아서 배를 침몰이다. 3번에서 H가 참이 아니고 참이라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있다고 한 이유는 더 그럴듯한 설명이 나올 때가지 잠정적으로 참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앵커가 해저에 박혀 침몰했다는 설명이 최소한 급히 핸들을 틀어 화물이 쏠려서 침몰했다는 정부의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이 가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먼저 동기를 설명할 수 없다. 도대체 세상에 누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겠는가? 고의로 침몰시키고 관련 자료를 조작하려면 많은 사람(여러 명의 선원, 해경, 해수부 등)이 관여를 해야 하는데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AIS 자료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거나, 출항 후 앵커가 사용된 적이 없었던 것이 확인되거나 아니면 앵커의 길이가 해저에 닿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 가설은 자연스럽게 폐기될 것이다. 반대로 AIS를 조작했다는 증언이 나오거나 선원들 조사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이 가설의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고 앵커를 내려 배를 침몰시켰다는 선원의 증언이 나온다면 이 가설은 세월호의 진짜 침몰원인이 될 것이다.

가설의 진위여부를 떠나 이 영화는 정부가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해 국민들에게 좀 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침몰원인에 대해 의문을 가질수록 좀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by 카이로스 | 2018/04/17 11:34 | 일반 | 트랙백 | 덧글(0)

P값에 대한 오해와 이해

 P값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검정하는 가설(귀무가설)이 참일 확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귀무가설에 대한 검정결과 P값이 0.01이 나오면 귀무가설이 참일 확률이 1%이고(반대로 대립가설이 맞을 확률은 99%) 만일 P=0.40 이면 귀무가설이 참일 확률이 40%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값은 귀무가설이 옳다고 가정한다.-가설의 확률이 아니고 귀무가설의 확률과도 거리가 멀다. P값은 단지 우리가 관찰한 데이터가 귀무가설이 맞고 사용된 통계적 모델에 대한 모든 가정이 옳다고 할 때 예측되는 패턴에 부합되는 정도만을 제시한다. 따라서 P=0.01은 우리가 관찰한 데이터가 통계적 모델(귀무가설이 옳다는 것 포함)이 예측하는 것과 가깝지 않다는 것만을 의미한다(그래서 귀무가설을 기각하고 대립가설을 받아들임). 반대로 P=0.40이라면 데이터가 모델이 예측하는 바와 부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귀무가설을 기각하지 못함).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데이터와 모델을 통해 예측한 값 사이의 차이는 통계량(예를 들면 t, 카이제곱 값)으로 측정한다. P값은 만일 모든 모델과 관련된 가정(귀무가설을 포함하여)이 옳다고 할 때 선택된 통계량이 관찰된 값보다 같거나 더 큰 값을 가질 확률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P값은 테스트하고자 하는 가설(귀무가설)뿐 아니라 데이터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모든 가정을 테스트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가정들은 전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모델이나 확률분포에 대한 가정 이상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분석 수행과정에서 중간 분석 결과는 최종 분석 결과 선택하는데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정(즉 최종적으로 제시된 결과에 대해서만 테스트를 했다는 가정)까지도 포함한다.

  P값이 더 작다는 것은 (모든 가정이 옳다고 가정하면) 관찰한 데이터가 더 이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귀무가설을 기각). 하지만 작은 P값이 통계적 모형에 대한 가정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P값이 아주 작은 경우 귀무가설이 틀렸기 때문에 작을 수도 있지만 연구 프로토콜을 위반했기 때문에 작을 수도 있고 P값이 작은 결과를 골라서 제시했기 때문에 작을 수도 있다. 반대로 P값이 큰 경우에 데이터가 사용한 모델 하에서 이례적이지 않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지 모델이나 그와 관련된 어떤 것(예를 들면 귀무가설)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 연구프로토콜이 위반되었거나 또는 큰 P값을 선택적으로 보고했기 때문에 높을 수도 있다.


 

 

by 카이로스 | 2018/04/15 19:17 | 일반 | 트랙백 | 덧글(0)

P값 기준을 0.005로 낮추자는 제안

출처: The proposal to lower by P value threshold to .005 by John PA Ioannidis

PublishedOnline:March22,2018. doi:10.1001/jama.2018.1536

 

  P값과 통계적 유의성 검정 방법은 생의학 분야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초록이나 본문에 p값을 보고한 논문의 대다수(96%)0.05 이하의 P값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문이 강조하는 주장 중 많은 부분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통계적 유의미성이라는 난제의 중요성을 인식한 미국통계협회(ASA)2016P값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상황이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정확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 ASA 성명서에 기여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해결방법에 우선순위를 매긴 20개의 독립적인 주석을 첨부했다. 또다른 72명의 연구방법론 연구자 집단에서는 최근에 새로운 발견에 대한 통계적 유의성의 기준을 0.05에서 0.005로 낮추자는 구체적이고 단순한 방안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대해 일부 집단에서는 강력한 지지를 표했고 다른 집단에서는 우려를 표했다.

  P값은 잘못 해석되고, 과도한 신뢰를 받고 있고 오용되고 있다. ASA 성명서는 이 3가지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P값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가 존재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연구 된 가설이 사실일 확률"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P값이 0.20 (2 %)인 경우 귀무가설 (: 이 약물은 위약과 효과가 동일하다)가 사실일 가능성이 2%이고 대립가설 (: 이 약은 위약보다 효과가 있다)이 맞을 확률이 98%라고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적절한 추론을 위해서는 완전한 보고와 투명성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P값에 대해 과도한 신뢰를 하게된다. P값이 작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보고와 투명성이 확보된 것은 아니다. 사실 P값이 작을수록 선택적 보고의 가능성과 불투명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P값의 가장 흔한 오용은 P값은 효과의 크기나 결과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주지 못하고 그 자체로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P값이 특정 기준값(예를 들면 0.05)을 통과했는지에 따라 과학적 결론을 내리거나 또는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주요한 문제는 통계적 유의성 기준(전통적으로 P=.05)를 통과하는 것을 실제로 연구결과(: 연관성 또는 치료 효과)가 참이고 타당하며 의사결정을 할 가치가 있다는 것과 잘못 동일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오해는 연구자, 학술지, 독자, 연구논문 사용자, 그리고 과학 정보를 소비하는 대중 매체 및 대중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0.05보다 약간 낮은 P값으로 뒷받침되는 대부분의 주장은 아마도 거짓이다 (즉 연구에서 주장하는 연관성과 치료효과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참인 주장 가운데도 의학 및 건강관리 분야에서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통계적유의성의 기준을 낮추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몇몇 과학 분야는 연구 결과가 P값이 얼마나 낮아져야 연구 결과가 참일 가능성이 충분히 높아지는지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했다. 예를 들어, 집단 유전체학에서 게놈 전반에 걸친 유의성 역치 (P < 5 × 10-8)를 채택함으로써 연구에서 발견된 연관성이 높은 재현성을 갖게 만들었으며 다른 인구집단에서 테스트해도 상관성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인간 게놈은 매우 복잡하지만 유의성 테스트에서 얼마나 많은 다중비교를 하는지 알려져 있고 분석이 체계적이고 투명하기 때문에 P<5 × 10-8라는 기준이 설득력있게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유형의 생물 의학 연구 대부분은 얼마나 다중비교를 필요로 하는지 불분명하며 분석과정이 비체계적이고 불투명하다. 사전 등록된 프로토콜과 분석 계획이 없는 대부분의 관찰연구에서는 얼마나 많은 통계적 검정이 진행되고 어떤 다양한 분석 경로를 탐색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숨겨진 다중비교, 비체계적 탐색 및 선택적 보고는 실험연구 및 무작위 시험에도 있을 수 있다. 사전에 프로토콜과 통계분석 계획을 갖고 있고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시험계획을 사전 등록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긴 하지만 데이터와 결과를 분석하는 방법과 정확히 어떤 결과를 제시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자가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다. 또한, 현대의 많은 임상 연구들은 보다 작은 이익이나 위험을 찾아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바이어스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증가한다.

  P값 기준을 .05에서 .005로 변경하면 과거 생물 의학 문헌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난 결과 중 약 3 분의 1이 유의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 변화는 유의성과 비유의성을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이다. 과거 관찰 연구의 대다수에 대해서는 이러한 재분류는 환영받을 일이다. 예를 들어 멘델리안 무작위 연구 결과는 P <.05에 근거한 과거 관찰 연구 결론 중에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통계적 유의성의 기준을 엄격하게 낮추더라도 귀중한 정보의 손실은 상대적으로 거의 없이 대부분 잘못된 결과들을 제거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작위 시험의 경우, 실재하는 효과가 0.005에서 0.05 사이의 P값으로 나타나는 비율이 더 높을 것이며, 아마도 몇몇 분야에서는 대다수 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 결과는 치료 효과가 추가 조치를 필요로 할만큼 충분히 크지는 않다. 따라서 유의 수준을 강화하는 것이 비록 일부 참이고 유용한 결과들을 유의성의 영역에서 제거하게 되겠지만 전반적으로 해보다는 이익이 더 클 것이다. P값을 낮추는 것과 무관하게 치료효과의 크기와 불확실성(신뢰구간으로 표현되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여전히 아주 중요한 일이다.

  통계적 유의성의 기준을 낮추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하지만 기준을 낮추는 것은 통계적유의성의 홍수에 빠져 익사하는 것을 예방하는 댐의 역할을 할 수 있고 보다 지속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할 수는 시간을 벌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해결방안은 통계적유의성의 기준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P값 자체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어떤 기준치를 계속 사용한다면 대부분의 관찰연구에 대해서는 훨씬 낮은 기준치를 사용하는 것이 선호될 것이다. 관찰연구에 대한 다수의 체계적고찰 결과를 다시 포괄적인 고찰(umbrella review)한 결과에서는 P<10-6의 기준치를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falsification end-point methods(즉 거의 모든 잘 확립된 귀무가설이 통과하기 어려운 그런 P값 기준을 사용) 역시 매우 낮은 P값을 제시하고 있다. 빅데이타의 출현과 함께 통계적유의성은 앞으로 더 의미를 갖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참이라 하더라도 너무 작아서 유용성이 없는 효과에 대해서도 일상적으로 극도로 낮은 P값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더 낮은 P값 기준을 채택하면 새로운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연구 수는 적더라도 충분한 검정력을 가진 더 크고 보다 세심하게 고안된 연구쪽으로 연구방향이 개혁될 수 있다. 그러나 부수적인 피해도 발생한다. 만일 연구자들이나 이해당사자들이 연구결과가 더 낮은 P값을 갖게 하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바이어스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질 수도 있다. 확실한 임상결과보다는 대체지표를 사용하여 작은 P값을 얻기 쉽기 때문에 연구 종말점(end points)으로 선정된 지표들의 임상적 적합성이 더 떨어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더 커진 평균회귀 현상 때문에 엄격한 P값 기준을 통과한 결과들이 제한될 것이고 새로운 발견은 예전보다 훨씬 과장된 효과크기를 갖게 될 수 있다.

  새로 제안된 p<0.005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보다 어렵더라도 지속가능한 해결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얼마나 쉽고 빠르게 채택 될 수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해결방법들이 있다. 새로운 해결방법들은 현재까지 축적된 과거의 생물 의학 문헌의 사용과 해석 또는 미래에 축적될 새로운 문헌의 설계와 전개를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연구결과가 사실로 굳어진 된 이후에는 완벽한 교정방법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문헌에 대해서는 시급히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과학자들은 통계적 추론을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하고 바이어스는 후향적이 아니라 사전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도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로 남아있을 것이다.

  데이터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만일 연구자나 연구의 이용자들이 연구방법이나 통계에 대해서 엄격한 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표준이하의 의학 통계나 이에 따른 잘못된 해석이 지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영역에서는 더 낳은 P값 기준을 채택하고, P값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적절한 경우에는 다른 유용한 추론방법(예를들면 베이시안 통계)을 채택할 것이다. 이러 변화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과거에 채택이 잘 안된 것이 비관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출발과 더 나은 실행방법을 빨리 채택하는 것은 항상 가능하다.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통계수련과정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주요 학술지와 연구지원기관으로부터의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할 것이다.

 

by 카이로스 | 2018/04/14 23:01 | 일반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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