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위험사회의 생존전략

살충제가 들어 있어 먹기에 부적합한 달걀이 생산·유통되어 소비된 살충제 달걀 파동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달걀은 그 동안 영양소가 풍부한 완전식품으로 인식되어 대부분이 국민이 자주 먹는 식품이었던지라 충격이 특히 컸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미숙한 업무처리는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달걀 생산 농장 전수를 대상으로 살충제 검사를 해고 부적합 달걀을 걸러내면서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가고 있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비슷한 문제가 다른 식품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먹거리 안전은 단발성 이슈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살충제 달걀 사건은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식품 안전 문제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살충제로 오염된 달걀이라고 해서 달걀 모양이 이상하거나 냄새가 나거나 맛이 달라진 게 아니다. 즉 우리 감각으로는 살충제 오염 여부를 전혀 지각할 수 없다. 살충제 달걀을 먹고 탈이 난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살충제 오염 달걀로 인한 피해는 피해자 대신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로 표현되기 때문에 역시 우리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이런 형태의 위험에 대해서 일찍이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통찰한 바가 있다. 그는 과거 위험이 위생학 기술이 부족해서(예를 들면 상한 달걀) 나타나는 반면에 오늘 날 위험은 산업화된 대량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과학지식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험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위험에 대한 정의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은 전문가의 손에 있게 되지만 전문가들만의 과학적 합리성에 의존해서는 위험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울리히 벡의 주장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과학적 의사결정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준치와 비교해서 위험의 크기를 평가하고 관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자체를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먹거리 위험사회에서 안전을 지키는 전략의 핵심은 먹거리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먹는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먹거리를 자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상자 화분 하나 정도는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다. 실제로 필자는 상자 화분 하나에 고추 세 주를 키워서 집에서 필요한 고추는 자급을 하고 있다. 전체 먹거리의 극히 일부지만 100% 안전이 보장된 먹거리를 직접 생산해서 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먹거리가 마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새롭게 열리는 고추를 보면서 생명의 힘을 느끼기도 한다.

먹거리를 구입할 때 생산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을 겪으면서 계란에 난각 번호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산 농장을 알 수 있는 먹거리를 구입하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통 단계가 짧을수록 식품의 신선도와 안전도가 높아지게 된다. 구체적인 방법은 생활협동조합 매장이나 로컬 푸드 매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곳의 먹거리 가격이 일반 마트보다 높을 수는 있지만 적정가격이 보장되어야 안전한 먹거리가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먹거리 위험의 근본원인이 낮은 가격에 대량생산하는 산업구조에 있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집단적으로 이뤄진다면 먹거리 생산환경 자체가 지금보다 안전한 쪽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좋은 정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좋은 정부의 의미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선의와 동시에 유능함을 갖춘 정부를 말한다. 살충제 달걀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정부의 역할에 많은 아쉬움을 갖게 된다. 이미 작년에 국정감사에서 살충제 달걀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과연 정부가 선의가 있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정부부처간의 혼선, 정보의 적시 공개 실패, 위해성 소통 실패 등 위기대응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정부가 국민의 식탁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정책을 능숙하게 펼치도록 지속적으로 촉구할 필요가 있다.

결국 먹거리 안전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by 카이로스 | 2017/09/14 21:58 | 일반 | 트랙백 | 덧글(1)

살충제 계란, 식약처가 위해소통에 실패한 이유



살충제 계란 파동은 살충제가 들어있어 먹기에 부적합한 달걀이 생산·유통되어 소비된 사건인데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달걀에서 비펜트린 등 몇 가지 농약이 기준치를 초과하여 검출되고 사용이 허가되어있지 않은 피프로닐이 검출된 사건이다. 지난 814일 달걀에서 살충제 오염이 처음 확인된 후 정부에서는 전국에 천 곳이 넘는 계란 생산 농장 전수를 조사하여 부적합한 달걀을 생산한 농장의 달걀 출하를 금지시켰고 이미 출하된 달걀은 최대한 회수하였다. 이 모든 일을 불과 일주일 사이에 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행정력이 아닐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항생제 검사 항목이 누락되거나 살충제 검출 농장이 몇 차례 바뀌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잘잘못이 아니고 살충제 달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미 작년에 있었음에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정부의 직무유기에 있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부의 신속한 개입으로 달걀의 살충제 오염 문제는 관리가 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충제에 오염된 달걀 중에 회수 되지 않고 소비된 달걀로 인한 건강 문제는 없을까? 예전부터 오랫동안 먹었던 달걀도 살충제에 오염되었을 수 있는데 이로 인한 건강문제는 없을까? 이런 우려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답변을 내놓는 과정을 위해평가라고 한다. 식약처는 821일 농림부와 함께 위해평가 결과를 브리핑하였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피프로닐의 경우 달걀을 아주 많이 먹는 사람(하루 3개 이상)이 현재 까지 검출된 농도 중 가장 높은 농도로 오염된 달걀(0.0763 ppm)을 먹었다 하더라도 급성독성참고치(급성 독성을 우려해야 하는 살충제의 양)10% 미만이고 몸에 들어온 살충제는 신속하게 배출되기 때문에 독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 운 나쁘게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달걀 중 가장 살충제에 많이 오염된 것을 먹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가장 높은 농도로 오염된 달걀을 매일 섭취한다고 가정할 때의 살충제 섭취량은 일일섭취허용량(평생동안 식품을 통해 유해물질에 노출되어도 건강의 문제를 나타내지 않는 농도)20% 이내로 이것은 그 동안 오염된 달걀을 매일 2.6개씩 먹었더라도 건강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와 같이 위해평가한 결과를 국민들이 잘 이해하도록 전달하는 것이 위해소통인데 브리핑 이후의 과정을 보면 식약처의 위해소통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브리핑 직후에 의사협회나 환경보건학회와 같은 전문가 단체들이 식약처 발표를 반박하는 성명을 낸 것이 뼈아팠다. 특히 국무총리가 살충제 달걀 파동을 예로 들면서 공직자에게는 설명의 의무가 있는데 식약처가 그 의무를 충실히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식약처의 위해소통 노력에 실패라는 도장을 찍은 셈이 되었다.

전문가 단체의 문제제기는 주로 만성영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 문제가 된 살충제로 인해 급성독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식약처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만성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은데 식약처의 결론이 너무 섣부르다는 것이다. 장기 섭취에 의한 만성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고노출군을 대상으로 피해조사도 하고 관리대책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 단체의 주장이다.

만성영향은 주로 암 발병이 문제가 된다. 피프리닐의 일일섭취허용량도 암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 동물실험 결과를 통해 구해졌다. 피프리닐이 인간에게 암을 포함한 만성영향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바 없다. 미국 환경보호청에서는 동물실험에서 갑상선암의 증가가 관찰된다는 결과를 토대로 피프리닐의 발암성을 발암가능 물질인 “C"로 분류하였다. 동물실험에서는 암을 일으킨다는 일부 제한된 결과가 있지만 인간에서는 발암성에 대한 증거가 없는 경우이다. 인간에게 발암성이 확인된 "A" 그룹, 발암성의 가능성이 높은 ”B" 그룹과 대비해볼 때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수는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발암물질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C" 그룹에 해당하는 물질을 일일섭취허용량의 20% 이내로 섭취하였으니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식약처의 입장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적용하면 일일섭취허용량을 훨씬 초과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일일섭취허용량이 평생 섭취해도 괜찮은 양을 의미하기 때문에 연령을 제한해서 평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다(평생을 영유아로 지내는 사람은 없으니까).

식약처와 전문가 단체가 위해평가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충분히 논의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기관리의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할 일과 학술적인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추진할 일을 논의해서 일치된 메시지를 냈더라면 국민들이 지금보다는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국무총리가 식약처의 설명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부분은 식약처에서는 가장 부적합한 달걀도 2.6개까지는 평생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보다 안전한 계란은 왜 전량폐기 하느냐는 것이다. 기자 출신 총리답게 일반 국민이 가졌을법한 궁금증을 제기한 것이다. 위해평가 결과는 일일섭취허용량과 같은 기준치와 비교하여 제시되는데 일반 국민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원활한 위해소통을 위해 몇 개까지 먹어도 안전한지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사실 이번에 급성독성의 경우 126개까지 먹어도 된다고 한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긴 하다. 하루에 달걀을 그렇게 많이 먹으면 살충제에 관계없이 배불러 죽을테니). 그런데 이번에는 마치 식약처가 살충제로 오염된 달걀을 먹어도 된다고 발표한 것처럼 잘못 전달이 된 것이다. 당연히 부적합 달걀은 개수에 관계없이 무조건 먹지 말아야 하고(정부가 생산·유통되지 않게 관리해야 하고) 위해평가 결과(2.6개 까지는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고 하는)는 과거에 먹은 달걀로 인한 건강영향을 가늠하고 필요한 대책을 수립하는데 활용하면 되는 것인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을 통해 다시 확인된 사실은 이제는 위해소통을 전문적인 영역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약처의 부서는 정책 대상 물질 별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식품은 식품안전정책국, 의약품은 의약품안전국, 화장품이나 한약은 바이오생약국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해당부서들은 자신들의 업무 대상 물질을 관리하는데 많은 경험이 있지만 국민과 소통하는데 필요한 전문성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소 달걀의 안전은 식품안전정책국에서 관장하더라도 살충제 달걀 파동 같은 문제는 소통을 담당하는 전문부서가 전면에 나서서 식품안전 부서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미숙한 소통으로 인해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시키는 불상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실 식약처에는 위해 예방 정책을 세우고 소통을 하기위한 조직인 소비자위해예방국이 있지만 이번 파동을 해결하는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식약처 내의 가장 선임국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늦게 생긴 조직이라 기존의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지 않은 틈새업무를 담당할 뿐 정작 위해소통이 필요한 때에는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크게 논란이 되었던 백수오는 건강기능식품 부서에서 대응하고 있고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생리대는 의약외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맡고 있다. 모두다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한 문제지만 정작 소통을 담당하는 부서는 배제되어 매번 소통에 관한한은 초보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국민을 상대하게 된다. 앞으로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식품과 의약품 관련 문제는 소통 전담 부서가 전면에 나서게 해야 한다. 국민 소통과 관련된 모든 노하우를 식약처의 소통 담당 부서에 축적시켜야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때 능숙하고 유능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래야 국민들이 식의약 분야에서도 새정부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by 카이로스 | 2017/08/28 17:18 | 환경의학 | 트랙백 | 덧글(0)

진실은....

뉴욕타임즈가 뉴욕타임즈에 실은 전면광고인데 트럼프 시대 미국의 언론 환경을 잘 보여주네요.


the truth is hard 진실은 견고하다.

the truth is hidden 진실은 숨겨있다.

the truth must be pursued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the truth is hard to hear 진실은 알기 어렵다.

the truth is rarely simple 진실은 간단하지 않다.

the truth isn't so obvious 진실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the truth is necessary 진실은 필요하다.

the truth can't be glossed over 진실은 얼버무려질 수 없다.

the truth has no agenda 진실에는 아젠다가 없다.

the truth can't be manufactured 진실은 만들어질 수 없다.

the truth doesn't take sides 진실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the truth isn't red or blue 진실은 진보나 보수가 아니다.

the truth is hard to accept 진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the truth pulls no punches 진실은 누구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the truth is powerful 진실은 강력하다.

the truth is under attack 진실은 공격받는다.

the truth is worth defending 진실은 지켜낼 가치가 있다.

the truth requires taking a stand 진실은 태도를 명확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the truth is more important now than ever 진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중요하다.

 

by 카이로스 | 2017/07/17 15:07 | 일반 | 트랙백 | 덧글(2)

김기춘씨의 기대여명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란 말이 있듯이 한 개인이 얼마나 오래 살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집단적으로는(예를 들면 국가 단위) 생명표를 구해서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생명표는 보건정책을 세우거나 국가 간 보건의료수준을 비교하는데 사용되고 있고 보험회사에서는 보험료를 정하는데도 활용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생명표를 범죄자의 형량을 정하는데 활용하려는 창의적(?)인 시도가 있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재판에서 특검이 징역 7년을 구형하자 김기춘씨 변호인이 한국남자 평균수명이 80라며 “1-2년 남은 노인에게 무슨 형벌이 필요하냐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인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변호인들이 평균수명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평균수명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갓 태어난 신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여명이다. 가장 최근 통계(2015)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신생아의 기대여명(평균수명)82.1년인데 남아는 79.0년이고 여아는 85.2년이다. 1939년생인 김기춘씨가 해당하는 78세 남자의 기대여명은 변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남자의 평균수명 79세에서 현재 나이 78세를 뺀 1년이 아니고 사실은 9년이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생명표를 계산하는 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각 연령 별 기대여명은 연령별 사망률을 적용하여 대상 연령이 앞으로 경험할 총 생존년 수를 구한 다음 대상 연령의 숫자로 나눠줘 산출한다[박스 참조]. 각 연령 별 기대여명은 그 나이까지 생존한 사람을 대상으로 산출하기 때문에 평균수명으로 계산한 값보다는 항상 많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30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30세까지 안 죽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82.1-30세인 52.1년이 아니라 52.7(어차피 0세에서 30세까지는 많이 안 죽기 때문에 크게 차이는 안남)이고 그 간극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크게 돼서 82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82.1-82=0.1년이 아니라 무려 8.1년이나 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것은 2015년의 연령별 사망률을 적용해서 산출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망률이 바뀌면 기대여명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70년에는 우리나라에서 0세의 기대여명이 62.3년이었고 47세의 기대여명은 24.9년이었다. 즉 올해 47세인 70년 개띠들은 자신들이 태어날 때는 47세가 되는 2017년도에는 수명이 25년 정도 남을 것으로 예상했어야 하지만 정작 2017년이 되고 보니 기대여명이 36세로 10년 이상 늘어나버렸다. 물론 이것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을 하면서 사망률이 꾸준히 낮아진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에 저명 의학학술지인 란셋에 실린 논문에서는 2030년에는 지금보다 평균수명이 더 늘어나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평균수명이 긴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김기춘씨의 기대여명은 9년 플러스 알파인 것이다.

 

[box] 기대여명 구하는 법

2015년에 10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고 가정해보자. 2015년 우리나라에서는 0세에서 1세 사이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272명이기 때문에 2015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1년 후에는 99,728(10만명-272)이 남게 된다. 다시 1년 후에는 1세에서 2세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24명이기 때문에 생존자는 99,704(99,728-99,728x0.00024)이 된다.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면 100세에는 생존자가 2,293명이 남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인간은 결국은 죽기 때문에 생존자가 0명이 될 것이다. 생존자 수를 이용하면 2015년에 태어난 10만명의 신생아가 경험하는 총 생존년 수를 구할 수 있는데 99,728+99,704+......+2,293+..=8,206,349년 이다. 총 생존년 수를 10만명으로 나눠준 값, 82.1년이 곧 2015년에 태어난 신생아의 기대여명이 된다. 현재 78세인 사람의 기대여명도 똑 같은 방식으로 78세 이후의 총 생존년 수를 구한 다음 78세 인구수로 나눠주면 된다.

 

by 카이로스 | 2017/07/12 23:38 | 평균수명 | 트랙백 | 덧글(0)

이반 일리히 부고 기사

이반 일리히 200212276세로 사망

 

-제도(-制度, anti-institutional) 작가인 이반 일리히는 1926924일 출생했고 200212276세로 사망했다.

학교가 학생에게 나쁘다고 믿은 과격한 사상가이지만 직접 행동하는 대신 사상가로 머물렀다.

이반 일리히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과격한 사상가 중 한명이었다. 1970년대에 멕시코에 있는 그의 씽크탱크에서 건강, 교육, 교통, 에너지 분야에서 과격하게 반-제도적(anti-institutional)이고 반-기술적(anti-technocratic)인 주장을 통해 전세계의 독자,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1년에 나온 학교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에서는 학교가 사람들을 무지로 이끈다고 주장했고, 1975년에 나온 의학의 한계(Limits to Medicine: Medical Nemesis: The Expropriation of Health)‘에서는 의료전문가들이 환자들의 안녕을 위험에 빠트린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일리히는 사회학자와 정치 과학자이었는데; 1968년부터 뉴욕의 포드함대학(Fordham University)에서 파트타임 직위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종류든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신중했다. 그는 역사가라는 명칭을 선택했고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은 시대는 중세 유럽이었고 당시 문헌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일리히는 자유, 평등, 형제애로 가득한 사회를 꿈꾸었지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전략가는 아니었고 점차로 행동 대신 사상 속으로 후퇴했다. 영국을 방문했을 때는 진짜 사회적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돌아다니기 보다는 교수들과 어울렸다.

이반 일리히는 비엔나(Vienna)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카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 지주였고 어머니는 유태인(Sephardic Jew)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를 비엔나에서 키웠고 그는 나중에 14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는데 정작 그 자신은 모국어가 없다고 하였다. 나찌를 피해서 그의 가족은 오스트리아를 떠났고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학업을 마쳤다.

피렌체 대학에서 역사학과 결정학(crystallography)에 대해 연구했는데 심리학과 예술의 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1943년에 로마로 가서 바티칸의 고위 교육기관인 그레고리안 대학(Gregorian University)에서 신부로 공부를 시작했다. 일리히는 짤스부르그(Salzburg)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1951년 뉴욕에서 푸에르토리코인을 대상으로 하는 목사업무를 임명받아 열정적으로 임했다. 1956년에는 푸에르토리코의 카톨릭대학의 부총장으로 갔고 여기서 히스패닉 사회에 미국식(“Yankee")종교모델이 적용되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카톨릭 고위성직자와 반목하게 되는데 특히 주지사 선거에서 산아제한에 찬성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금지하는 주교를 공격하면서 충돌한 후 1960년 뉴욕으로 소환되었다. 195933세의 나이에 고위성직자(Monsignor)에 오르는데 당시에는 가장 젊은 고위성직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기 위해 말은 타거나 도보로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베네주엘라의 카라카스에 이르는 5000 킬로미터 여행을 시작했다. 콜롬비아에서는 기아가 발생한 지역에서 선교목적으로 기독교인에게만 분유를 제공하는 행위를 중지시켰다. 그러나 이런 성급한 행동은 12명의 어린이를 죽게 만들었고 이 일은 그 후 수년 동안 그를 괴롭게 하였다.

1961년에 멕시코시에 문화교류센터(Intercultural Center for Documentation)를 설립해서 대중과 지도자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축적하고자 했다. 여기서는 라틴아메리카에 선교사로 갈 사람들을 위한 집중강좌를 제공했는데 이 강좌는 나중에 탈양키화(de Yankification)강좌로 불렸다. 또한 이 강좌는 나중에 라틴아메리카의 이슈와 핵심적인 서구의 사회문화적 문제에 대해 과격한 사상을 제공하는 곳으로 진화하였다. 강좌들은 문화적으로 제국주의 사고를 제거할 수 있는 집단 치료법에 집중하였다. 타임지에서는 그의 학생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소리 질렀고 강의를 했으며 함께 놀고 기도하고, 모욕을 주고 함께 술을 마셨다

카톨릭 사제들과 일반인들도 문화교류센터에 자주 왔는데 일리히는 규칙적으로 이 센터에 등록된 사람 중 상당수를 반미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교회와 더 깊은 갈등에 빠졌다. 멕시코에 있는 카톨릭의 우익 집단에서는 그를 아주 무서운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19686월 그의 믿음과 견해가 이단에 해당하는 지를 심문 받기위해 로마로 소환되었다. 최종적으로 이단으로 판정되지는 않았지만 1969년 바티칸은 이 센터에 신부들이 참석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는 조사내용을 뉴욕타임즈에 누설했는데 그는 구아테말라 대주교 납치에 역할을 한 것으로 기소되었다. 두 달 후에 그는 자발적으로 사제직을 포기했으나 독신 서약은 유지하였다.

씽크탱크로서 센터의 역할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교육이었다. 이반 일리히의 가장 유명한 저서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없는 사회1971년에 나왔는데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게 된다. 서구의 교육제도가 관료주의, 성과주의, 전문성 숭배로 인해 붕괴하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학위, 자격증 기관을 통한 학습에 대해 반대의견을 냈다. 표준화된 교육구조의 비효율성이 그를 소름끼치게 했다. 그는 성인들은 12년의 교육과정 내용을 일년 또는 이년이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성장을 멈춰라 'Tools for Conviviality(1973)'라는 저서에서 그는 타켓을 텔레비전(대화를 중단시키는)과 자동차(도시를 숨막히게 하는)을 확장시켰다. ‘Energy and Equity(1974)'에서는 자전거 타는 것을 주장했는데 정작 자신은 제트비행기로 여행을 했기 때문에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강연과 세미나를 요청받았고 그때마다 학문적 가정들을 뒤흔들기 위해 소크라테스 기법을 적용하였다.

의학의 한계(의학의 복수-건강을 뺏김)(Limits to Medicine" Medical Nemesis: The Expropriation of Health (1975)에서는 의료전문가들이 환자들에게 적극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의사들에 의해 야기된 질병이라는 의미인 의원성(iatrogenesis)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처방은 환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방법들을(의료분야에서 제공된) 이용해서 자신들을 직접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and its Professional Enemies(1975)에서는 전문가들이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의 책들은 점차로 실제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지적 역사에 천착해서 대중적이 가지는 태도와 가정들에 대해 조사해나갔다. 이중에는 ABC: the alphabetisation of the Popular Mind(1988)In the Vineyard of the Text(1993) 등 중세 문학에 초점을 맞춘 저작들이다.

문화교류센터는 1976년에 문을 닫았고 그가 매우 인기가 높았던 독일의 대학에 새로운 출구를 만들었다. 그는 Kassel, Oldenburg, Marburg에서 방문교수직을 얻었다.

그의 전문성에 대한 공격은 실제 대중사회의 삶과 직접적 접촉을 하는데는 실패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날카로운 지적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말년의 생활은 멕시코시 외곽의 진흙 오두막에서 보냈는데 그에게 현대 산업도시 생활의 진짜 문제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

그는 Penn State University의 방문 교수였고 Bremen에서 가르쳤고 암을 앓다가 숨졌다.

 

the Times, London 5 December 2002

by 카이로스 | 2017/07/01 23:36 | 이반 일리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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