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그 불편한 진실

자궁 속에 있는 태아가 엄마의 몸 밖으로 배출되어 죽게 되는(또는 죽어서 배출되는) 현상을 유산이라고 한다. 유산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유도되기도 한다. 산모의 건강 때문에 인위적으로 유산시키는 경우를 치료유산이라고 하고 그 밖의 모든 인공유산을 선택유산, 흔히 낙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 형법에서는 낙태를 한 산모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낙태를 해준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있다. 물론 모자보건법에서 강간에 의한 임신이거나 부모의 유전질환이 있거나, 산모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경우 등 예외적으로 낙태가 허용되고 있지만 사실상 법적으로 낙태는 금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낙태에 대한 법률은 국가마다 다른데 허용정도에 따라 ➀조건없이 합법, ➁강간, 산모의 건강, 태아의 결함, 사회경제적요인 요인이 있는 경우 합법, ➂강간, 산모의 건강, 태아의 결함 등을 제외하고는 불법, ➃ 예외없이 불법 등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➁번과 ➂번의 차이는 출산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으면 낙태를 인정하느냐의 여부인데 이를 인정하는 국가에서는 사실상 낙태가 합법인 셈이고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사실상 불법인 셈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사실상 불법인 반면에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낙태가 완전 합법 또는 사실상 합법이다.

낙태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낙태의 천국이다. 임신주수가 10주 미만이라면 30만원 내외의 비용으로 대부분의 산부인과에서 당일로 낙태를 할 수 있다. 태아가 그보다 크더라도 비용이 더 많이 들고 큰 태아를 낙태해주는 산부인과를 찾아다니는 수고가 더해질 뿐 역시 별 어려움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낙태가 이루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해 35만 건 정도 된다는 연구가 발표된 적이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한해 우리나라의 전체 출생아 수가 47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만일 낙태 건 수와 출생아 수가 같다고 하면 전체 임신부의 반이 낙태를 셈이니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50%가 된다. 네덜란드의 낙태율이 10% 정도이고 우리보다 인구가 6배나 많은 미국의 한해 낙태 건 수가 80만 건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 낙태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낙태의 허용여부에 대한 논란에는 종교적, 도덕적, 문화적 측면이 함께 얽혀 있어 복잡하기 짝이 없지만 크게 보면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시 할 것이냐 아니면 임신한 여성이 출산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우선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태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 된 적이 없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두 가지 상충하는 이해를 별 어려움 없이 조정하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낙태를 불법화해서 태아의 생명권을 최대한 존중하되 현실에서는 그 법률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서 여성의 권리를 동시에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 방식으로 낙태라는 불편한 진실을 피해가는 것이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다. 먼저 출산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60년대부터 시작된 가족계획의 지상목표는 출생아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국가 주도로 온갖 방식의 피임방법 시행되었으며 낙태는 최후의 피임수단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 되었고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국가적 과제가 되어 버렸다. 과거에는 낙태를 방조하는 것이 국가시책이었다면 이제는 낙태를 줄여서 출산을 늘리는 것이 국가시책에 부합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부인과 의사들 자신이 불법낙태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산부인과 의사들 수백 명이 참여하고 있는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에서는 앞으로 불법 낙태를 시행하는 의사를 고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일종의 내부고발자가 나선 셈이기 때문에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법 따로 현실 따로인 현재의 상황이 어느 쪽으로든 정리가 되어야 하는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낙태를 불법화하고 있는 현행법을 강제하는 것이 낙태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률을 엄격하게 시행하면 출산율이 증가해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낙태를 처벌하기 시작하면 당장 외국으로 원정낙태를 가는 산모들이 늘어날 것이고, 낙태 암시장이 형성되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비싼 돈을 내고 낙태를 하게 될 것 이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높은데서 뛰어내리거나 성분을 알 수 없는 약물을 먹는 등 자가낙태를 시행할 것이다.

그래도 결국 태어난 ‘원치않은’ 아이들은(대부분 미혼모 또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의) 고아로 수출되거나 자라서 오히려 사회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많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1990년대 범죄율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20년 전에 시행된 낙태합법화의 결과로 흑인, 낮은 사회계층, 미혼모의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나 커서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아이를 낳기 어려운 사정(사회경제적 이유를 포함해서)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임신 초기에 낙태를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다만 낙태를 할 때는 충분히 숙고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 예를 들면 상담절차 같은 것을 만들어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면 좋을 것이다. 또한 태아가 사람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는 임신 중기 이후에는 낙태를 엄격히 제한함으로서 태아의 생명권도 같이 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청소년기부터 성교육을 철저히 실시해서 원치않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하고 보육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낙태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는 사회경제적 원인을 해소시켜줘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낙태법을 뒤집어보면 임신하면 무조건 출산을 해야 하는 출산강제법이다. 법대로라면 한번 임신진단을 받으면 출산을 하든지 아니면 법이 정하는 낙태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21세기 문명화된 사회에서 이 땅의 여성들이 그런 무지막지한 환경에서 살수는 없는 것이다

by 카이로스 | 2009/11/14 22:07 | 의학 | 트랙백 | 덧글(2)

십킬로 완주기

올봄부터 아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주위 사람이 하는 것 중에 좋아보이는 것은 서스럼없이 따라해서 '따라쟁이'라는 별명이 있는 나는 자연스레 아내를 따라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침 집앞에 있는 센트럴파크 축구장에 트랙이 있어서 달리기를 하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대략 트랙 한바퀴가 350미터 쯤 되는데 한번 10바퀴 정도도니까 3.5킬로미터 정도를 뛰는 셈이다.
뛰어보니 세상에 달리기만큼 정직한 운동이 없다. 전과정을 그냥 온몸으로 하는 것 말고 다른 요령이 있을 수 없다. 대부분의 운동이 좋은 장비(심지어 등산장비도 제대로 갖추려면 100만원은 쉽게 넘어간다.)를 필요로 하지만 달리기에는 특별한 장비도 필요없다.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어느날, 아내가 11월에 열리는 중앙마라톤(10킬로)에 참가신청을 덥석해버렸다. 목표가 생겼으니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우고 체계적으로 훈련을 했어야 마땅하지만 이러저러 바쁜일 때문에 일주 또는 이주 또는 3주에 한번씩 트랙을 10바퀴 도는 것 이상은 하지 못햇다. 그러다 지난주 일요일 대회 일주일을 남기고 대회시간과 같은 아침 8시에 실전연습을 아내와 함께 했다. 실전연습이란데 대단한 것은 아니고 트랙을 도는 대신에 집에서 반석산 주위로 난 자전거도로를 한바퀴 돈 것인데 길이가 3-4킬로 정도 될 것 같다.
 실전연습 자체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는데 종일 가슴이 답답했다. 이게 달리기의 여파인지 얼마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카페인에 대한 증상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한동안 안 마시던 커피를 그날 아침에 마신것이다. 이유가 어쨌든 대회에 꼭 출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회의론이 들기 시작한다. 중앙마라톤에서 티와 책자가 들어있는 우편물을 보내왔지만 뜯어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월요일 출근했다가 갑자기 생긴 오한때문에 일찍 퇴근했다. 저녁에 괜찮다가 화요일 오전에 다시 한번 오한이 나면서 그날 잡힌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집에서 쉬었다. 여기저기 자문을 구해보니 혹시 모르니 타미풀루를 복용하는게 좋겠다고 한다. 아내에게 연락하니 놀래서 일하다말고 죽과 함께 약을 구해왔다. 다행히 더 이상의 증상은 없었지만 마라톤 출전은 사실상 마음속에서는 거의 포기했다. 아내한테도 그냥 당신 혼자만 출전하고 나는 그냥 데리다만 주겠다고 넌즈시 애기해 놓았다.
전날인 토요일, 보통은 토요일에 일을 하지 않지만 지난번 빵구낸 약속 때문에 부득히 출근을 했다. 그런데 비 내리는 것이 심상치 않다. 아마 대회가 취소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 마지막으로 컨펌을 받기 위해 아내에게 말했다고 '잔소리말고 참석하라'말에 부랴부랴 우편물을 뜯어서 티셔츠 챙기고 번호표 부치고 법석을 떨었다.
당일 아침 쌀쌀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비가 오지는 않는다. 서울시의료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회장까지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참가자가 2만명이 넘는다니). 아침 8시 풀코스를 뛰는 사람들이 먼저 출발하고 20분경에 출발했다. 정확히 출발선이 어딘지도 모른채 앞사람 따라 출발한 것이다.
절대 심박동수를 올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걷는 것보다는 조금빠른, 가장 느린 속도로 뛰었다. 아내도 같이 보조를 맞춰 뛰었다. 계속 추월을 당해서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반환점을 돌 무렵 아내는 속도로 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버려두고 혼자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원래 페이스를 유지했다. 뛰면서 상점에 있는 유리창을 통해 내모습을 보았다. 구부정한 상체가 보이다. 언제 저렇게 굽었을까.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 뛰는데 갑자기 허용시간이 초과되었으니 버스에 타라는 소리가 들린다. 소위 '회수차'가 있어서 뒤처진 사람들을 태워간다는 말을 들은지라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잠실주경기장 트랙이다. 마라톤은 참 민주적인 운동이라라는 생각이 든다. 일류선수나 나 같은 사람이나 똑같은 코스로 달리는 것이다(출발시간만 다를뿐) 트랙을 한바퀴 돌아 결승선에 도달한 무렵 먼저 도착한 아내가 환영해준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마누라밖에는 없다. 결승적 도착 시간은 1시간 16분, 10킬로 제한 시간이 1시간 20분이니 무려 4분이나 일찍 들어온 셈이다.
뿌듯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생각은 접은지 오래고 못하는 것(할 수 없는 것)의 리스트가 하나하나씩 늘어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성취를 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10킬로 정도를 아주 느린 속도로 뛸 정도는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무엇보다 큰 소독이리라.

나눠준 간식을 먹고 마라톤 선수들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선두권은 다 아프리카 선수들인데 계속 2위로 들어오던 빨간색 선수가 트랙에 들어서자 마저 속도를 내더니 역전을 했다. 노란색 선수가 재역전, 다시 재역전 결국 빨간색 선수가 1초차로 우승을 했다. 계속 2등으로 달리다가 나중에 추월해서 우승해버리는 것이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뭐라 할 일은 아니리라.

by 카이로스 | 2009/11/02 13:33 | 일반 | 트랙백 | 덧글(2)

30년만에 다시 읽는 전쟁과평화-프롤로그

중학교 여름방학때의 시골에 있는 외갓집 평상에서 전쟁과 평화를 읽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 많은 집이 그랫듯이 우리집에도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는데 그중의 한권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여름 방학때 꼭 독파하겠다고 결심하고 외갓집에 내려갈 때 가져가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던지 당장이라도 팽게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당시에는 뭘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금보다 훨신 심했던지라 꿈 참고 읽었다. 한가지 꾀를 낸것은 사람들의 심리묘사나 당시 사회상황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건너뛰고 스토리 위주로 읽는 것이었다. 결국 끝을 봤고 톨스토의 '전쟁과 평화'를 독파했다는 약간의 성취감을 얻었다.

얼마전부터 고전을 다시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마도 노화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자각과 함께 앞으로 새로운 것을 성취하기 보다는 남은 인생동안 호모사피엔스의 본질을 체험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었던 것 같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이리저리 뒤적이다 파우스트를 비롯한 몇권의 책을 구입하기도 하고 들춰보기도 했는데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에서 '전쟁과평화'를 역대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는 뉴스를 보는 순간 중학교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감 동시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없이 인터넷 서치를 통해 번역이 잘 되 있다는 인디북(박형규역)에서 나온 5권짜리를 구입했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덜컥 읽기 시작하지는 않고 사전준비를 많이 했다. 우선 이렇게 헤비한 정찬을 먹기 위해서는 에피타이저가 꼭 필요한데 그리샴의 신작 어소시에이트를 선정했다. 미국 변호사들이야기인데 별다른 감동은 없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책을 계속 붙잡게 하는 정도의 흡인력은 있었다. 한가지 얻은 것이라면 미국 변호사들의 일하는 스타일인데 이사람들은 일하는 시간을 기록해서 시급을 고객에게 청구한다. 즉 일을 시작할 때 스톱워치를 누르고 잠시 쉴때는 스톱시키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 다시 시간을 기록한다. 이렇게 시간을 기록해서 초짜는 시간당 200불을 청구하고 고참은 그 몇배를 청구하는 것이다. 나야 구지 따지면 시급이 몇십불 수준이고 청구할 때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카운트하면서 일하니까 집중력이 높아진다. 일하다가 어느새 인터넷의 이곳저곳을 헤매는 일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에피타이저를 먹고 드디어 메인디쉬를 시작했다. 아울러 크로스체킹을 위해서 audible.com에서 '전쟁과 평화' 오디오북도 같이 구입을 했다. 영어로 나오는 오디어북을 이해하기가 쉽진 않지만 어쨌든 두개 이상의 레퍼런스가 있어야 내용을 믿을 수 있는 직업병은 어찌하기가 어렵다.

이제 막 1권을 읽었는데 가독성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읽힌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예전에 마냥 지루했던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매우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다면 웬놈의 백작, 공작이 그리 많고 이름도 어찌나 생소하고 긴지 등장인물 파악이 쉽지 않다. 결국은 자주나오는 사람이 주인공이니 조만간 익숙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by 카이로스 | 2009/08/05 14:32 | 일반 | 트랙백 | 덧글(0)

베란다에서 담배피지 맙시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면서 여름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여름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더위만이 아니다. 한여름에 창문을 열고 살면서 이웃에서 날아드는 담배냄새를 참아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특히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고충이 심하다. 기상조건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얼마 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실험한 내용을 보니까 1층에서 담배를 피우면 5층에 있는 사람까지 담배냄새를 맡게 된다. 2008년 한국갤럽의 흡연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41%니까 자신이 사는 곳에서 5층 아래까지 담배피우는 사람이 한명도 없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즉 여름에 아파트에 창문을 열고 살면서도 담배냄새를 안 맡는 사람들은 매우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물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입장도 딱하기는 하다.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금연구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고 TV에서는 간접흡연은 폭력이라는 공익광고가 수시로 방송된다. 자기 집 말고는 마음껏 피울 수 있는 곳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담배를 끊어버리고 싶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담배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마약이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은 니코틴이라는 약물에 중독되어 있다. 혈액 중에 니코틴 농도가 낮아지면 참기 어려운 금단증상들이 나타나서 니코틴을 보충해야만 해소가 된다. 니코틴약물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 조차 담배를 끊겠다고 공약하고도 못 지키고 있으니 보통 사람은 더 말해 뭐하겠는가. 갈수록 코너에 몰리고 있는 흡연자 입장에서는 다른 곳도 아니고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자기 집에서 피는 것까지 뭐라고 하면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고 울분 섞인 항변을 할만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자기 아파트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했지만 오염시킨 것은 이웃들과 공유하고 있는 공기라는 사실이다. 사유지에 있는 공장의 굴뚝이라도 대기오염물질을 맘대로 배출할 수 없고 사유지에 있는 배수구라도 폐수를 맘대로 방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면 대략 같은 라인의 다섯층에 걸쳐있는 살고 있는 다섯 세대, 대략 20명이 공유하고 있는 공기를 오염시키게 되는 것이다.

흡연자 중에는 자신은 담배를 직접 피우기도 하는데 공기 중에 퍼진 그깟 담배연기 좀 마신다고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하지만 간접흡연이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공중보건국의 공식보고서에 따르면 간접흡연에 잠깐이라도 노출되면 심장과 혈관에 즉각적인 해를 끼쳐서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 그래서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심장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25-30% 가량 증가한다. 물론 폐암의 위험도 증가한다. 간접흡연을 통해 들이마시는 연기 속에는 포름알데히드, 염화비닐, 벤젠, 비소 등 많은 발암물질이 들어있다. 미국의 환경보호청과 국제암연구기구는 간접흡연을 일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폐암의 위험이 20-30% 증가한다. 미국 공중보건국 보고서에서는 간접흡연으로 미국에서만 한해 3,000명이 폐암으로, 46,000명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간접흡연은 어린이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다. 임산부가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태아의 성장에 장애를 일으켜서 저체중아를 출산하게 되는데 체중이 적게나가는 신생아들은 정상 체중 아기에 비해서 유병율과 사망률이 높다. 한 살 미만의 영아가 특별한 원인 없이 갑자기 사망하는 영아돌연사증후군이 있는데 간접흡연이 원인 중의 하나로 의심되고 있다. 간접흡연에 노출된 어린이들은 기관지염, 폐렴, 중이염의 위험이 높아진다. 간접흡연은 요즘 환경성질환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천식과도 관련이 많다.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천식의 발생위험이 높아지고 이미 천식을 앓고 있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10% 정도가 천식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간접흡연이 매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간접흡연은 폐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은 간접흡연이 노출된 순간 뿐 아닌 성인기의 건강에 까지 지속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접흡연이 피해를 주는 것은 호흡기계통 질환만이 아니다. 최근 어린이들에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흔히 ADHD로 알려져 있는데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과다활동과 충동성을 보이는 질환이다. 아직까지 ADHD의 원인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간접흡연으로 발생하는 뇌의 저산소증이 위험요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잦아진 것 자체가 간접흡연의 유해성 때문이다. 예전에 흡연자들은 안방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 거실로 밀려나고 급기야 베란다로 나간 것이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때 가족들로부터 받는 구박도 구박이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간접흡연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대신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 셈인데 베란다에서 피우는 담배 때문에 간접흡연에 노출되는 5세대에 20명 중에는 임산부나 천식을 앓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웃이 단순한 불편함을 겪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폭행을(물리적이 아니고 화학적인)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이어야 할 자신의 집에서 말이다.

그리고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가족들이 간접흡연의 피해를 전혀 안 받는 것도 아니다. 간접흡연은 남이 피우는 담배연기를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2차흡연’이라고도 하는데 요즘에는 ‘3차흡연’의 피해에 대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3차흡연’은 담배가 꺼진 이후에 담배잔류물에 노출되는 것을 말한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그 잔류물들이 흡연자의 입에, 옷에, 머리카락에 그리고 차안에 또는 주위 카펫 등에 남아있게 된다. 담배잔류물에도 담배연기와 마찬가지로 화학무기라고도 할 만큼 많은 유해화학물질들이 들어있다. 어린이의 IQ를 떨어뜨리는 납, 발암물질인 비소, 폴로니움 등이 있고 특히 시안화물은 산소공급을 감소시켜 영유아의 두뇌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가족들을 보호하겠다고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면 이웃들에게는 담배연기로 ‘2차흡연’의 피해를 입히고 들어와 아이를 안아주면 자녀에게는 ‘3차흡연’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집에 퇴근해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 꼭 피워야 한다면 베란다에서 피우지 말고 번거롭더라도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적어도 여름에는 말이다. 물론 니코틴 때문에 당하는 이 모든 수모와 번거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담배를 끊는 것이다.

by 카이로스 | 2009/07/06 22:08 | 환경의학 | 트랙백 | 덧글(1)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소비를 줄여라
- 적게 구입하라
- 포장을 하지마라
- 재생되지 않는 자원으로 만든 상품을 피해라
- 버리지 말고 고쳐써라

@ 진화의 오래 과정에서 각인된 상식은 무조건 아껴쓰라는 건데 현대 자본주의 구조는 소비를 하지 않으면 쓰러지는 구조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생각하면 계속 소비해야 굴러가는 구조는 결국은 미래세대의 자원을 댕겨쓰는 것이니 지속가능성의 가장 큰 적일 수 밖에 없다. 
@ 먹거리는 가급적 바다건너온 것은 피해야 겠다. 신토불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이고 우리농업도 살릴 수 있으니 일석삼조

에너지 효율을 높여라
- 자가용 대신 자전거, 걷기, 대중교통 이용
- 자가용 같이타기
- 전기효율이 높은 전자제품, 연비가 높은 차를 사라
@ 예전에 디젤값이 쌀때 SUV를 타거나 요즘에 연비가 좋은 차를 타면서 생기는 착시현상은 많이 운행할 수록 차액만큼 돈을 버는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늘 최재천 교수의 강의를 들으니 현재 이혼숙려중(자동차와)라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안되더라도 최소한 자동차 중독에서는 벗어나야 겠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차를 몰지 말아야 겠다.

재활용을 하라
- 집과 집안에서 재활용 할 것
- 재활용품으로 만든 상품을 구입할 것

정치적인 행동을 할 것
- 친환경적인 정치인에 투표할 것
- 생태적으로 건전한 투표방법을 받아들일 것
- 환경보호단체에 참여할 것
- 직접 출마할 것
@요즘 환경단체들은 죽을 맛인 모양이다. 상근직원을 줄이고 돌아가면서 휴직하고. 지원도 많고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에 많이 참여했던 옛날의 영화(?)에 대한 댓가를 지금 치르는 걸까?
과거에 마땅지 않은 점이 있었더라도 요즘은 회원이 되서 매달 1,2만원이라도 도와주는게 좋겠다.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환경보호를 할게 아니라면 말이다. 오늘 지난번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었던 안병옥박사가 주관하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창립행사에 다녀왔다. 잘 되기를 기원한다.

연구와 교육을 촉진할 것
- 친구와 가족들에게 환경이슈에 대해 얘기해서 인식을 높일 것
- 학교나 직장에서 친환경적인 제안을 지원할 것
- 직접 행동을 통해 역할모델이 될 것
@자전거 타고 다니는 교수가 되야하나?

길게 생각하라
-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비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 장기적 환경전망을 가지고 있는 정책결정자나 기업을 지원할 것
@길게(long term) 생각하는 정치인은 그 자리에 짧게(short term) 머무른다는 어떤 정치인의 말이 생각난다. 짧은 임기안에 뭔가 업적을 내야하는 정치구조를 바꿔야 할텐데

by 카이로스 | 2009/06/12 22:38 | 환경의학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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