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한 마라토너다.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5시17분이다. 알람을 20분에 맞췄는데 알람 없이 거의 정확하게 깼으니 징조가 좋다. 기억나지 않는 꿈을 몇 편 꾸기는 했지만 잠도 비교적 잘 잔 편이다. 밖을 보니 아직 어두운데 다행히 비가 오지 않는다. 기상청에서 주말 내내 비가 올 거라고 그렇게 겁을 줬는데 토요일에도 안오고 일요일 새벽 현재도 안 오고 있다. 어제 밤에 달도보고 별도 봤으니 비가 안 오는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기상청을 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기가 막히게 운이 좋다는 것인데 누구 욕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기상예보가 맞으면 좋지만 틀릴 경우는 비가 온다고 했다가 안 오는 위양성(false positive)이 안 온다고 했다가 비가 오는 위음성(false negative)보다는 훨씬 욕을 덜 먹을 것 같다. 의학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오진을 하더라도 위양성인 경우에는 질병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을 때 환자들이 기쁜 나머지 의사 탓을 하지 않지만(온갖 마음 고생을 하고 확진을 위해 돈도 많이 썼으면서도) 위음성인 경우에는 의사를 고소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방어진료를 하게되고 그러다 보니 의료비가 비싸지는 것이지만 하여간 그렇다.

 

어제 준비한 떡 두 조각을 오렌지 주스와 함께 마시고 커피를 마신 후 화장실 업무까지 말끔히 처리하고 드디어 잠실운동장으로 출발을 했다. 그런데 용서 고속도로 중간쯤에서 비가 오기 시작한다. 탄천 주차장에 주차했을 때는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보슬비면 예정대로 달리고 장대비면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건 분명 장대비에 더 가깝다. 그래도 일부러 온 게 아까워서 출발지인 운동장를 가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7시10분.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한다. 다행히 빗줄기가 현저히 약해졌다. 특히 6개월 전부터 준비한 거사를 포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마누라와 딸 생각도 난다. 선크림을 꺼내 얼굴에 바르면서 속으로 외쳤다. 그래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다. 옷을 갈아입고 짐을 맡겼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5시간 후에는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화장실을 다시 가려다가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출발지로 향했다. 삼성SDS에서 단체로 출전했는데 '백혈병어린이돕기 운동'을 한단다. 대기업에서 병마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돕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고 어린이에서 가장 흔한 암종이 백혈병이니 말이 되긴 하지만 영 찜찜하다. 자기 회사 노동자들을 집단적으로 백혈병에 걸리게 하고 산재도 인정을 안 해서(원래 산재 인정은 회사가 관여할 일이 아닌데 그걸 엄청난 영향력을 동원해서 인정을 못하도록 해서) 자기 회사를 위해 헌신한 노동자를 두 번 죽인 회사가 다른 질병도 아니고 바로 그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를 돕겠다고 하니. 참 이걸 너무 무신경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너무 뻔뻔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삼성SDS 자체는 백혈병과 관련이 없을 수 있고 특히 오늘 뛰러 나온 사람들이야 아무 상관이 없을테니 더 뭐라 할일은 아니겠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준비했던 우비도 벗어던지고 출발점에 섰다. 그런데 다시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한다. 어차피 우비를 입고 뛸 것도 아닌데. 이제 모르겠다. 행사가 시작되고 내빈들이 인사한다. 혹시 박원순 시장이 나왔을 까 했는데 안 나오고 대신 정무부시장이 나왔다. 2년 전 중앙마라톤에서 내 생애 처음 공식적인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는 오세훈 시장이 나왔었는데 차이라면 차이다.

 

드디어 출발.

함께 뛰어나가다 오버페이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페이스를 늦췄다. 10분 달린 후에 원래 계획대로 30초 정도 걸었다. 이번 플코스에 임하는 나만의 비장의 무기가 두가지 있다.

첫번째는 달리고 걷고 달리기(run-walk-run)인데 미국 사람이 쓴 마라톤 책에 나와있는 건데 이 책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었다. 노동 강도(업무시간이 아니라)가 현저히 떨어진 현대에 가장 많은 직업병은 아이러니하게도 근골격계질환이다. 그 이유는 무거운 물건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고 작업이 자동화되면 똑 같은 동작(비록 동작 하나 자체는 힘이 별로 들지 않지만)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동작을 쉼 없이 반복하다보면 거기에 사용되는 근육이 쉴 시간(회복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팔펫팅을 반복하고 컴퓨터에서 마우스만 쓰는 사람에서 손과 팔목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몇 시간이고 쉼없이 달리기를 하면 당연히 다리에 있는 여러 근육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부상을 입을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반면에 중간 중간 걷기를 하면 달리기에 주로 사용되던 근육이 쉴틈(회복될 틈)이 생기기 때문에 피로도도 훨씬 덜하고 부상의 위험도 크게 감소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쉼없이 달린다. 속도를 내겠다는 욕심도 있고 최소한 걷지 않는 게 러너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미리 적어 둔 묘비명에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썼다. 나도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면서 아무리 천천히 뛸지언정 걷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의학적으로 볼 때 부상의 지름길인 것이다. 물론 계속 뛰는 것의 물리적 정당성이 있기도 하다.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있기 때문에 중간에 쉬면 다시 뛰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물리적 법칙과 의학적 지혜의 조화, 거기에 해답이 있다. 달리고 걷고 달리기 방법의 핵심은 다리에 무리가 오기 전에, 초반부터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0분 달린 후에 30초 동안 걸었다. 그리고는 2키로미터마다 30초 내지는 일분씩 걸었다.

 

출발할 때 화장실 업무를 한번 더 보지 못해서 그런지 뒤가 조금 무겁다. 뛰다가 근처에 있는 건물에 들어갔는데 화장실 문이 잠겨서 실패했다. 조금 더 뛰다가 공공시설 같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 드디어 성공했다. 매일 세 번씩 밥을 먹고 한번 이상 화장실 가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평생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거추장 스러운 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하루 중 한두 시간만 투자하면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니 그리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속을 비우니 몸이 가벼워진다. 오늘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데 장난이 아니다. 수중마라톤이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처음 마라톤 풀코스가 수중마라톤이라니. 팔자려니 했다. 천둥 번개가 안쳐서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비가 올 때 뛰기가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원래 장거리 달리기는 다리 근육이 충분히 훈련이 된 경우에는 결국 어떻게 효과적으로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발생하는 열을 식히느냐의 문제이다. 인간이 어떤 동물보다도 장거리 달리기를 잘하는 것은 다리 근육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열배출을 효과적으로 잘하기 때문인 것이다. 비가 계속 오니 몸에서 열이 생기는 족족 날아 가버려면 오히려 뛰기가 편한 면도 있다. 그리고 수중 마라톤, 이거 아무나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마라톤을 많이 달려도 하늘이 도와주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비가 너무 많이 온다. 평생 맞은 비보다 더 많은 비를 맞은 것 같다.

 

뛰다가 5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만났다. 어떻게든 따라 붙기로 했다. 42.195km를 제한시간인 5시간 안에 들어오려면 대략 10km를 7분 안에 뛰는 소위 7분주를 해야 한다. 스톱워치를 차고 왔고 매 키로마다 간판이 있기 때문에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무리지어 달리는 것이 편하다.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의 베테랑들이 자기 기록은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가이드가 되어주는 자원 봉사자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3시간 페메부터 시작해서 대회제한 시간인 5시간 페메까지 시간대별로 있어서 자기 목표시간에 맞는 페메에 맞추어 뛰면 된다. 페메는 질주만이 있는 도로상에서 등대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사회의 멘토같은 사람이다. 남은 인생을 우리 사회의 페메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0킬로에서 파워젤을 하나 먹었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포도당을 우선 쓰기 때문에 몸에서 탄수화물이 고갈된다. 물론 지방 같은 다른 영양소를 사용해서 계속 달릴 수는 있지만 문제는 포도당만 이용하는 뇌에서 포도당이 부족하면 달리기 자체를 비토해버린다. 뛰는 이유 내지는 의욕 자체가 사라져버리면 몸은 멈추고 마는 것이다.

 

14키로 쯤 뛰다보니 맞은 편 차선에서 선두주자들. 케냐에서 온 특급선수들이 벌써 반환점을 돌아서 달려온다. 아무 표정없이 일정한 페이스를 달리는 폼이 마치 달리는 기계 같다. 차를 통행시켜야 하니 인도 쪽으로 붙어서 달리라는 차량방송이 나오기 시작한다. 여태까지는 특급선수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으면 달렸는데 이제 부터는 더 이상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라톤같이 평등한 운동이 없다. 누구나 전과정을 자기 다리로만 움직여 이동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물론 출발시간이나 도로통제에서 엘리트 선수들이 우선이지만 이정도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사회가 딱 마라톤만큼만 평등하면 좋겠다. 그나저나 다리에서 조금씩 피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달리고 걷고 달려서 드디어 25키로 좀 가니 반환점이 나타난다. 11시10분을 넘으면 시간 초과로 회수차량을 타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뒤에서는 경찰차에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차량을 이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다행이 13분정도 여유가 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바로 뒤에서 압박을 해올 것이다.

 

33키로 지점.

그 이상을 뛰어본 사람이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나로서는 한 번도 뛰어 본 적이 없는 본인미답의 경지이다. 사실 과연 풀코스를 뛸 수 있을지 계속 걱정을 하면서도 내심 믿은 것이라고는 지난 2주간 집중적인 연습을 통해서 32키로 까지는 뛰어봤다는 것이다. 동네에 있는 트랙이 650미터인데 2주전에는 40바퀴, 즉 26키로를 뛰었고 지난주에는 50바퀴, 즉 32.5키로를 뛰었는데 피로도가 40바퀴를 뛰었을 때와 비교해서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보다 한 10바퀴만 더 뛰면 되는 것이니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이번 대회에 임하면서 나만이 가지고 있던 두번째 비법은 달리면서 착지할 때 발 앞부분으로 하는 것이었다. 보통 마라톤 책에서는 단거리는 발 앞꿈치로 착지하는게 맞지만 마라톤에서는 발뒤꿈치부터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발뒤꿈치로 찾지하고 발 전체를 지면에 접촉시키면서 발가락으로 차준다나 어쩐다나.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특히 본투런(born to run)이라는 훌륭한 책을 쓴 맥두걸 같은 사람은 이게 나이키의 농간이라고 한다. 원래 인간은 맨발로 뛰어다니는데 이 때 당연히 발 앞부분으로 착지를 하게 된다. 즉 진화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 맨발로 한번 뛰어보면 무슨 소린인지 대번 알 수 있다. 그런데 운동화회사에서 쿠션이 있는 운동화를 팔아먹기 위해 뒤꿈치에 쿠션을 잔뜩 넣고 뒤로 착지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뒤로 착지하면서 쿠션이 없는 신발을 신으면 바로 부상이 온다. 그러니 대부분이 마라토너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운동화를 좋은 것을 사야한다고 조언하는데 발 앞 부분으로 착지를 하게 전혀 딴 얘기가 되버리는 것이다. 내 신발도 쿠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신발인지만 뒤꿈치로 착지가 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발 앞 부분으로 착지를 하도록 노력하였다.

 

30키로 후반에 들어가면서 점점 힘들어진다. 5시간 페이스메이커를 쫓아가기가 쉽지 않다. 심장이 묵직해지는 느낌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점점 한계에 다다르는 것일까?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중환자실에 몇개월 누워 계신 후에는 침대에 앉는 것, 두발로 서는 것, 걷는 것 하나하나가 사투였다. 평생을 걷고 사셨는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길쭉한 물건을 세워 놓는 것, 그것도 두발로만 세우는 것은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단지 두발로 걷는 다는 것 또는 뛴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오죽 하면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생물 종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두발로 걷거나 뛸까. 두발로 뛰기라는 기적 같은 일을 몇시간째 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너무 힘들다. 멀리서 잠실롯데가 보인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40키로 지점을 지나면서 시계를 보니 5시간에서 20분정도가 남아있다. 잘하면 5시간 이내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다. 드디어 잠실운동장 입구. 마누라 얼굴이 보인다. 이 엄청나 도전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작은 딸도 같이 왔지만 아빠의 마라톤에 그다지 관심은 없다. 부모자식관계가 내리사랑인 걸 어쩌랴.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만 속이 아프니 인정할 수밖에. 드디어 트랙에 들어섰다. 트랙을 한바퀴 돌아야 골인이다. 시간이 3분밖에 안 남았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로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드디어 골인. 정확한 기록은 좀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5시간 안에 들어왔다(4시간 59분 28초). 해낸 것이다.

 

오늘 하루가 인생 하나를 산 것 같다. 무엇보다 내 몸이 너무 고맙다. 평생을 책상머리에 앉아 살면서 특별히 몸에 대해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커다란 성취가 가능하도록 견뎌준 몸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마누라가 너무 고맙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마라톤은 커녕 달리기를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달린 것은 순전히 마누라가 달리기 때문이다. 딱 망둥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는 속담대로였다. 게다가 첫 완주를 축하하는 현수막까지 준비해와서 나를 감동시켰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마누라 밖에는 없다.

 

처음으로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세상이 바뀌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엄청난 성취를 해냈는데 세상은 그대로인거다. 내일 줄줄이 있는 약속도 그대로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내게 그렇게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존재의 본질은 관계이기 때문에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뀌게 된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 마라토너로서의 남은 인생이 기대된다.

 

 

by 카이로스 | 2011/11/06 22:12 | 일반 | 트랙백 | 덧글(0)

나는 쉬고 싶다.

신문에서 '나는 쉬고 싶다'라는 산사체험 프로그램을 보고는 바로 예약을 했다. 평소부터 산사체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일단 '내비둬'라는 프로그램의 컨셉이 뭔가 힘들거라도 문턱을 크게 낮춰주었고 기간이 마침 내가 휴가기간으로 삼고 있는 때와 동일한 것을 확인한 순간 그냥 문턱을 넘어버린 것이다.

김제의 금산사로 가는 무궁화를 혼자 타고 내려가면서 '안나카레리나'를 읽기 시작했다. 작년부터인가 중고등학교 때 의무감에서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나 아니면 제목만 익혀두었던 고전을 보기시작했는데 첫타자로 인디북에서 나온 5권짜리 전쟁과평화를 읽었는데 역시 재미가 없었다. 중간중간에 있는 오타를 발견하는 것 정도를 빼고는. 도스도예프스키의 죄와벌은 그런대로 볼만했고.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중학교때 책장속에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서 일권을 읽었는데 그다지 재미는 없지만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번역은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잡은 책이 다시 톨스토이의 안나까레리나. 대단한 고전같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유부녀가 바람난 얘기인데 스토리 전개가 빨라서 잘 읽힌다. 안나까레리나의 내용 중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많이 인용되는 구절인데 심지어 기재부 장관도 이 구절을 인용해서  기업이 위대해지는 것보다 몰락하는 길이 더 다양하기 때문에 공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안나 카레리나의 바로 첫 문장이고 그 문장에 대한 해석도 따로 없기 때문에 그냥 자기맘대로 인용해서 써먹으면 된다.

어느덧 김제역
내려서 5번버스를 타고 세월아 내월아 금산사로 가면서 주변 경관을 둘러본다. 널은 논. 건물이라고는 이층을 넘는 것이 별로없고 농약상, 철물점, 좀 번화한 곳에는 미용소. 번듯한 건물이라고는 농협, 새마을금고, 우체국, 그리고 시골학교들. 아마 30-40년 전이나 별차이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수매가에 목을 매면서 농사를 짓고 일부가 월급장이인 전형적인 농촌경제. 왜 전북도민들이 새만금에 집착했는지 알것 같다. 최소한 공사 중에는 사람과 돈이 돌았을테니.

지나다보니 큰 저수지가 보인다. 며칠전에 읽었던 '7년의 밤'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세령호가 연상된다. 댐(세령호)을 만들면서 수몰된 지역 주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서 사실과 진실의 간격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첫구절이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라는 범상치 않은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구성이 꽉 짜여진 단단한 소설로 한번 잡으면 놓기가 어렵다. 역시 소설의 미덕은 재미이다. 작가가 전직 중환자실 간호사 출신이라는데 '내 심장을 쏴라'라는 전작도 있다니 한번 볼 생각이다.

어느덧 금산사

사백년쯤 된 삼층 높이 미륵전과 흐드러지게 핀 백일홍의 조화를 이루는 아늑한 절이다.
프로그래이 컨셉이 내비둬인데 사실은 이런 저런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서 참가자들을 가만이 놔두지는 않는다. '내비둬'라는 또다른 행위를 통해서 뭔가를 얻고자 하는 절과 스님의 노력이 역력하지만 또 어떠랴.

제일 좋은 거은 스마트 폰을 반납하면서 세상과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연결이 끊어지면서 정말 신기하게도 복잡한 생각이 다 사라진다. 이것을 洗心이라고 하나. 사회생활에서는 눈에 보이는 그리고 안보이는 촘촘한 위계질서 속에서 위치지워진 역할을 해야한다. 단지 역할을 할 뿐아니라 결국 그게 나가 되버려서 사회관계의 틀을 벗어나는 인간관계에서는 거의 장애아 수준이 된다. 그런데 산사에서는 그냥 무리중의 한명일 뿐이다. 게다가 특별히 참가자간의 관계를 강조하지 않는 덕에 그냥 아무하고도 특별한 얘기 없이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누구다라는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이것을 下心 이라 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연구실 족자에 있는 無心卽道라는 글귀에 연상된다. 어쨌든 마음을 다스리고 쉬는데는 완벽한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하나 발우공양이 정말 인상적이다. 스님들의 식사방법이라는데 식사후에 그릇을 깨끗이 물과 단무지를 씻어낸후 그것을 다 먹어버리는 것인데 이렇게 하닌 식사후에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식생활을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닥치는데로 먹어치우고 버려버리는 현재의 식문화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마지막날 프로르램은 염주를 만드는 것인데 한알을 꿸때마다 한번씩 부처님앞에 절을 해야하니 무려 108번을 절을 해야한다. 미륵전에는 부처님이 세분이 계시는데 자세히 보니까 콧수염과 턱수염이 좀 얍상하게 그려져 있다. 뭐 특별히 기원할 것이 없는 지라 아무생각없이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어머니 생각도 나고 동생들, 아내, 아이들 생각도 나면서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기원하게 된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상황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힘들게 만들 염주를 누굴 줘야하나 한참 고민하다 염주는 염주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108배를 마쳤다.

산사체험이 끝나고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몇건의 부재중 전화와 많은 이메일이 와 있지만 뭐 그냥 그렇다. 똑같은 일상에 다시 복귀했지만 몸과 마음이 좀 편해진 것을 느낀다.

by 카이로스 | 2011/08/06 12:16 | 트랙백 | 덧글(2)

나는 마라토너다.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사람이 가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굳이 '나는 가수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무늬만 가수가 아닌 진정한 가수다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라토너라는 말은 온당치는 않다. 왜냐면 나는 마라톤을 완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마라토너다'의 정확한 의미는 '나는 마라토너가 되고 싶다' 정도일 것이다.
천명을 알만한 나이에 갑자기 여지것 인생경로와는 전혀 상관없는 마라톤에 꽂힌 것은 정말 희안한 인연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아내를 따라 장난삼아 달리다 2년전 중앙마라톤에서 10km를 완주하기 전까지만 내가 달리기를 좋아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난 4월 경기마라톤에서 하프마라톤을 거의 꼴찌로 완주할 때 까지만 해도 내가 감히 마라톤 완주를 염두에 둘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달릴 수록 느끼는 것은 내가 마라톤 유인원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21세기에 도시 공원을 달리면서 아주 옛날 우리 조상이 사바나에서 몇시간이고 달렸을 때의 느낌을 느낀다. 내가 이 우주의 한 부분이고 여지것 세상에 살았던 집합체로서의 인류와 하나가 되는 느낌, 이걸 러너스 하이라고 하고 하던가. 어쨌든 그런 기분이다. 마냥 달리도록 진화된 인간에게 42km는 불가능한 거리가 전혀 아니다. 뛰어보면 안다. 5km를 달려보면 10km를 어렵지 않게 달릴 수 있고 10km를 달려보면 하프코스가 눈앞에 보인다.
물론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책상에 앉아서 보낸 사람에게는  일생 일대의 모험일게 분명하다. 
첫째로 심장마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둘째로 무릎과 발의 인대염, 그 무시무시한 장경인대염과 족저근막염을 피해가야 하는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기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꾸준히 아주 꾸준히 달리는 것인데 욕심을 버리는 것도 꾸준히 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장정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일대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by 카이로스 | 2011/06/24 21:59 | 일반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병의 첫째 후보는 흔히 감기라고 부르는 급성상기도감염이다. 어른들은 일년에 평균 2번 이상 걸리고 어린이들은 그보다 훨씬 자주 걸리니 감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병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감기에 걸리더라도 2주 정도 지나면 저절로 낫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예를 들면 오늘 현재)에 감기에 걸려있는 사람의 비율(시점 유병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을 수 있다. 오뉴월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 바로 5월에는 특히 더 그렇다.

반면에 이 병은 언제 조사하더라도 전국민의 1/5에 해당하는 천만명이상이 앓고 있기 때문에 시점유병률의 측면에서 보면 단연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병이다. 이 병은 주로 성인 남성에서 많이 생기는데 질병관리본부에서 2009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인 남자의 46.9%, 성인 여자는 7.1%가 이 병에 걸려있다. 어린이들은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걸리지만 그래도 남자 중고생의 9.6%, 여자 중고생의 3.3%가 이 병에 걸려있다.

이 병의 질병코드는 F17이다. 의료계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질병 코드가 F로 시작되는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이 병도 정신과영역의 질환이다. ‘물질의 반복된 사용 후에 발전하고 약물복용의 강한 욕구, 약물 사용에 대한 절제곤란, 유해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병의 특징이다. 이 병에 걸렸을 때, 즉 물질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유해한 결과는 암, 심장병, 폐질환 등 주요 질환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우리 국민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암의 1/3은 이 병의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의 합병증이 하나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인지라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생명이 평균적으로 10년 정도 단축된다.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특정물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 물질 속에 있는 니코틴 때문이다. 우리 몸에 흡수된 니코틴은 신속하게 뇌로 전달되어 뇌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하고 이어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게 된다. 이 병을 가진 사람들이 이 물질을 사용할 때는 느끼는 쾌락감, 그리고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감소하는 효과가 모두 도파민 때문이다. 반면 니코틴이 계속 공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고, 기분이 가라않고, 민감해지고, 불안해지는 금단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도파민 분비에 따른 쾌락감을 느끼고 금단증상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이 물질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 즉 중독의 핵심인 것이다.

이 물질의 사용은 니코틴에 의한 약리작용뿐 아니라 이 물질의 맛과 향과 같은 요인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또 이 물질을 사용하는 특정상황, 예를 들면 식사 직후, 화장실, 술자리 등과 연계되면서 조건반사화가 이루어진다.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주고 먹이를 주는 일을 되풀이하면 먹이 없이 종소리만으로도 침을 흘리는 것처럼 특정상황에서 이 물질을 사용할 때마다 니코틴에 의해 분비되는 도파민으로 인한 쾌락감이 각인되면 그 상황에서는 항상 이 물질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런 조건반사화는 뇌의 구조적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병은 낫기도 매우 어렵거니와 낫더라도 술자리와 같이 조건반사화된 상황에 처하면 쉽게 재발이 된다.

이 병은 전염된다. 주위에, 특히 가까운 친구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예를 들면 부모나 선생님)사람이 이 병에 걸리면 자신도 이 병에 걸릴 위험이 굉장히 높아진다. 그런데 전염되는 방식이 특이하다. 보통의 전염병(법이 개정되어 현재는 감염병이 정확한 용어)이 감염된 사람(또는 동물)에 있던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가 탈출하여 새로운 사람에게 옮겨가는 방식으로 전염되는데 반해 이 병에서는 사람 간에 옮겨다는데 병원체는 없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의 뇌에서 뇌로 바로 전달된다. 뇌에서 뇌로 전달되는 보이는 않는 정신적 실체를 표현하기 위해 밈(meme)이라고 용어를 쓰기도 하지만 아직 용어가 확립되어 있지는 않다. 어쨌든 물리적 실체가 아닌지라 전염과정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만일 얼마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시크릿가든의 주인공 현빈이 이 병에 걸린 환자로 나왔다면 이 병 환자 수가 순식간에 늘어났을 것이다.

강력한 중독성과 함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전염 특성 때문에 담배중독은 지난 10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담배중독의 합병증인 심장마비, 암, 뇌졸중 등의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한해에 5백만명을 넘는다. 담배중독에 대처하기 위해서 세계보건기구의 주도로 담배규제기본협약(WHO FCTC)이 맺어졌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172개 국가가 가입하였다. 이 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담배중독 환자수를 줄이기 위해 담배가격인상정책, 담배포장 및 라벨정책, 간접흡연보호대책, 담배내용물 관리, 담배광고 및 판촉제한정책 등을 시행할 의무를 지닌다. 우리나라도 협약가입국으로 이런 정책들을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전혀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담배가격인상은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이고 발암물질로 가득한 담배내용물을 관리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담배중독은 환자 수가 무려 천만명이 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심각한 질환이지만 이 질환에 대응하기 위한 변변한 마스터플랜도 없고 대통령이나 장관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적도 없다.

5월31일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금연의 날이고 올해 금연의 날 주제는 바로 담배규제기본협약이다. 금연의 날 포스터에 제시된 것처럼 담배규제기본협약은 소화기나 구명튜브처럼 바로 생명을 구할 수 있은 직접적인 수단이다. 2012년 담배규제기본협약 당사국 총회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개최국 위상에 걸맞는 획기적인 금연정책이 시행되기를 기대해본다.en_tfi_wntd_2011_poster_lr.pdf


 

by 카이로스 | 2011/05/30 22:16 | 트랙백 | 덧글(0)

사람 목숨의 가격

    인간의 목숨에 가격을 매긴다는 생각 자체가 불순해 보이지만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경우에 어떻게든 보상을 해야 하는데 보상액수를 정하려면 좋던 싫던 목숨의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다. 이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호프만식 계산방법으로 그 사람의 평균소득과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곱해 액수를 산정한다. 당연히 사람 목숨의 가격은 천차만별이 되고 각자가 살아온 인생의 행로에 대한 가격표가 매겨지는 셈이다.

     목숨의 가격을 매기는 것이 꼭 사고의 보상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리주의 사상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정책 수행에 들어가는 예산과(비용)과 그 정책으로 인해 기대되는 이익(편익)을 비교하는 비용편익분석을 한다. 비용편익분석의 대상이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하는 도로개설과 같은 인프라건설과 관련된 내용 분 아니라 사람의 건강이나 생명을 구하는 편익에 대해서도 흔히 한다. 예를 들면 미국 FDA에서는 담배갑에 암환자의 모습을 담은 경고라벨을 붙이는 정책을 제안하면서 이 라벨을 붙이는 비용보다 라벨을 붙여서 생명을 구하는 편익(한명당 790만불)이 크다고 주장했고 미국 교통부에서 자동차의 천장에 고장력강판을 사용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근거로 구르는 사고가 발생 시 사망사고를 줄임으로서 얻는 편익(한명당 600만불)이 추가적인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분석을 가장 많이 하는 부서 중의 하나가 환경청(EPA)인데 며칠 전에 공장이나 소각장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강화하는 정책을 내 놓으면서 새로운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산업계에서는 연간 20억불이 들지만 그로 인해(대기오염이 감소되면) 연간 2,600명에서 6,6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고 4100명의 심장마비와 42,000명의 천식발작을 줄일 수 있어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230억불에서 560억불에 이른다고 하였다. 소위 B(enefit)/C(ost) ratio가 10 이 훨씬 넘어 버리기 때문에 무조건 수행해야 할 정책이 된 것이다. 참고로 이때 EPA가 사용한 사람의 목숨 값은 910만불이니 미국 정부 부처 중에서 환경청이 사람의 목숨 값을 가장 후하게 처 주는 셈이다.

     
사람의 목숨 값은 계산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호프만식 비슷하게 사망이나 질병으로 인한 임금손실, 치료비용 등 직접비용을 계산하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줄이는데 얼마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불어보는(예를 들면 사망위험을 1/1000 줄이기 위해서 얼마까지 지불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 본 다음 이 금액에 다시 1000을 곱한 값이 사람 목숨 값) 방법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실제로 사고 위험이 높은 직종의 사람들이 추가로 받는 위험수당에 그 직종의 초과위험을 곱해서 산정하는 방법이 있다. 첫번째 방법으로 구한 목숨 값이 가장 (아주) 낮고 그 다음이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방법이 가장 높다. EPA의 목숨 값이 가장 비싼 이유는 세번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비용편익 분석을 해서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쩐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이클 샌뎔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EPA에서 목숨 값을 계산하면서 70세 이상의 목숨값은 낮게 계산하는(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가치가 낮다는 공리주의적 사고에 근거하여) 소위 노인할인을 했다가 항의를 받고 철회한 일화가 나온다. 사람 목숨의 가격을 정하는 것이 현재는 환경을 보호하고 안전을 강화하는 정책을 수행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번 이런 틀을 받아들이면 언제든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이런 방법이 도입되기 시작하고 있다. 환경부에서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수도권대기질개선법을 시행하면서 내세운 근거 중에 하나는 대기오염이 개선되면 사망자 수도 감소하고 천식과 같은 질환도 감소한다는 것이었다. 오세훈 시장도 서울의 공기를 개선해 시민들의 잃어버린(또는 잃어버릴) 수명을 돌려주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목숨의 가격을 산정해서 비용효과 분석을 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고 있지 않은데 나는 이 정도까지가 딱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목숨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고 애시당초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가격을 매김으로서(비록 현재는 높은 가격을 받고 있지만) 가격 산정이 가능한 것으로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by 카이로스 | 2011/02/27 11:33 | 일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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