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날 바다' 후기

그날 바다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물론 큰 감동을 주는 픽션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앵커를 내려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가설을 과학적 근거를 이용해서 믿게 만드는 넌픽션이라는 점에서다.

현재까지 정부의 공식적인 침몰원인 발표는 인천에서 출발한 배가 순조롭게 운항하다가 사고해역에서 미숙한 조타수가 큰 각도로 핸들을 틀었는데 화물과적으로 배의 복원성이 낮아진 상태에서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침몰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침몰직전에 사람이 튕겨나갈 정도의 큰 충격이 있었다는 생존자의 증언이 있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커다란 외력이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선발자동식별장치(AIS)의 원시자료를 가지고 추정해보면 배가 알려진 것보다 사고해역의 섬(병풍도)에 근접해서 지그재그로 운항하였고 항적 경로가 해저지도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앵커를 해저에 내려 침몰시킨 것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것을 숨기기 위해 AIS자료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세월호 침몰원인을 찾아가는 방식은 논리적 추론 방법 중에 귀추법(abductive reasoning) 또는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에 속한다. 이 추론은 어떤 현상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해서 이 현상에 대한 가장 그럴듯하고 가장 간단한 설명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어떤 놀라운 현상 P가 관찰된다.

2. 만일 가설 H가 참이라면 P는 당연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3. 따라서 가설 H가 참이라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있다.

이 영화에서 과학적 근거로 제시하는 AIS 원시자료 분석결과, 배의 이상한 운행에 대한 생존자 증언, 차량 블랙박스 영상, 침몰당시의 컨테이너 위치, 녹 슬은 왼쪽 앵커 등이 P에 해당하고 H앵커를 내려 해저에 박아서 배를 침몰이다. 3번에서 H가 참이 아니고 참이라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있다고 한 이유는 더 그럴듯한 설명이 나올 때가지 잠정적으로 참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앵커가 해저에 박혀 침몰했다는 설명이 최소한 급히 핸들을 틀어 화물이 쏠려서 침몰했다는 정부의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이 가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먼저 동기를 설명할 수 없다. 도대체 세상에 누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겠는가? 고의로 침몰시키고 관련 자료를 조작하려면 많은 사람(여러 명의 선원, 해경, 해수부 등)이 관여를 해야 하는데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AIS 자료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거나, 출항 후 앵커가 사용된 적이 없었던 것이 확인되거나 아니면 앵커의 길이가 해저에 닿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 가설은 자연스럽게 폐기될 것이다. 반대로 AIS를 조작했다는 증언이 나오거나 선원들 조사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이 가설의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고 앵커를 내려 배를 침몰시켰다는 선원의 증언이 나온다면 이 가설은 세월호의 진짜 침몰원인이 될 것이다.

가설의 진위여부를 떠나 이 영화는 정부가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해 국민들에게 좀 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침몰원인에 대해 의문을 가질수록 좀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by 카이로스 | 2018/04/17 11:34 | 일반 | 트랙백 | 덧글(1)

P값에 대한 오해와 이해

 P값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검정하는 가설(귀무가설)이 참일 확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귀무가설에 대한 검정결과 P값이 0.01이 나오면 귀무가설이 참일 확률이 1%이고(반대로 대립가설이 맞을 확률은 99%) 만일 P=0.40 이면 귀무가설이 참일 확률이 40%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값은 귀무가설이 옳다고 가정한다.-가설의 확률이 아니고 귀무가설의 확률과도 거리가 멀다. P값은 단지 우리가 관찰한 데이터가 귀무가설이 맞고 사용된 통계적 모델에 대한 모든 가정이 옳다고 할 때 예측되는 패턴에 부합되는 정도만을 제시한다. 따라서 P=0.01은 우리가 관찰한 데이터가 통계적 모델(귀무가설이 옳다는 것 포함)이 예측하는 것과 가깝지 않다는 것만을 의미한다(그래서 귀무가설을 기각하고 대립가설을 받아들임). 반대로 P=0.40이라면 데이터가 모델이 예측하는 바와 부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귀무가설을 기각하지 못함).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데이터와 모델을 통해 예측한 값 사이의 차이는 통계량(예를 들면 t, 카이제곱 값)으로 측정한다. P값은 만일 모든 모델과 관련된 가정(귀무가설을 포함하여)이 옳다고 할 때 선택된 통계량이 관찰된 값보다 같거나 더 큰 값을 가질 확률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P값은 테스트하고자 하는 가설(귀무가설)뿐 아니라 데이터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모든 가정을 테스트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가정들은 전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모델이나 확률분포에 대한 가정 이상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분석 수행과정에서 중간 분석 결과는 최종 분석 결과 선택하는데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정(즉 최종적으로 제시된 결과에 대해서만 테스트를 했다는 가정)까지도 포함한다.

  P값이 더 작다는 것은 (모든 가정이 옳다고 가정하면) 관찰한 데이터가 더 이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귀무가설을 기각). 하지만 작은 P값이 통계적 모형에 대한 가정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P값이 아주 작은 경우 귀무가설이 틀렸기 때문에 작을 수도 있지만 연구 프로토콜을 위반했기 때문에 작을 수도 있고 P값이 작은 결과를 골라서 제시했기 때문에 작을 수도 있다. 반대로 P값이 큰 경우에 데이터가 사용한 모델 하에서 이례적이지 않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지 모델이나 그와 관련된 어떤 것(예를 들면 귀무가설)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 연구프로토콜이 위반되었거나 또는 큰 P값을 선택적으로 보고했기 때문에 높을 수도 있다.


 

 

by 카이로스 | 2018/04/15 19:17 | 일반 | 트랙백 | 덧글(0)

P값 기준을 0.005로 낮추자는 제안

출처: The proposal to lower by P value threshold to .005 by John PA Ioannidis

PublishedOnline:March22,2018. doi:10.1001/jama.2018.1536

 

  P값과 통계적 유의성 검정 방법은 생의학 분야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초록이나 본문에 p값을 보고한 논문의 대다수(96%)0.05 이하의 P값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문이 강조하는 주장 중 많은 부분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통계적 유의미성이라는 난제의 중요성을 인식한 미국통계협회(ASA)2016P값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상황이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정확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 ASA 성명서에 기여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해결방법에 우선순위를 매긴 20개의 독립적인 주석을 첨부했다. 또다른 72명의 연구방법론 연구자 집단에서는 최근에 새로운 발견에 대한 통계적 유의성의 기준을 0.05에서 0.005로 낮추자는 구체적이고 단순한 방안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대해 일부 집단에서는 강력한 지지를 표했고 다른 집단에서는 우려를 표했다.

  P값은 잘못 해석되고, 과도한 신뢰를 받고 있고 오용되고 있다. ASA 성명서는 이 3가지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P값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가 존재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연구 된 가설이 사실일 확률"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P값이 0.20 (2 %)인 경우 귀무가설 (: 이 약물은 위약과 효과가 동일하다)가 사실일 가능성이 2%이고 대립가설 (: 이 약은 위약보다 효과가 있다)이 맞을 확률이 98%라고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적절한 추론을 위해서는 완전한 보고와 투명성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P값에 대해 과도한 신뢰를 하게된다. P값이 작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보고와 투명성이 확보된 것은 아니다. 사실 P값이 작을수록 선택적 보고의 가능성과 불투명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P값의 가장 흔한 오용은 P값은 효과의 크기나 결과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주지 못하고 그 자체로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P값이 특정 기준값(예를 들면 0.05)을 통과했는지에 따라 과학적 결론을 내리거나 또는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주요한 문제는 통계적 유의성 기준(전통적으로 P=.05)를 통과하는 것을 실제로 연구결과(: 연관성 또는 치료 효과)가 참이고 타당하며 의사결정을 할 가치가 있다는 것과 잘못 동일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오해는 연구자, 학술지, 독자, 연구논문 사용자, 그리고 과학 정보를 소비하는 대중 매체 및 대중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0.05보다 약간 낮은 P값으로 뒷받침되는 대부분의 주장은 아마도 거짓이다 (즉 연구에서 주장하는 연관성과 치료효과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참인 주장 가운데도 의학 및 건강관리 분야에서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통계적유의성의 기준을 낮추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몇몇 과학 분야는 연구 결과가 P값이 얼마나 낮아져야 연구 결과가 참일 가능성이 충분히 높아지는지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했다. 예를 들어, 집단 유전체학에서 게놈 전반에 걸친 유의성 역치 (P < 5 × 10-8)를 채택함으로써 연구에서 발견된 연관성이 높은 재현성을 갖게 만들었으며 다른 인구집단에서 테스트해도 상관성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인간 게놈은 매우 복잡하지만 유의성 테스트에서 얼마나 많은 다중비교를 하는지 알려져 있고 분석이 체계적이고 투명하기 때문에 P<5 × 10-8라는 기준이 설득력있게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유형의 생물 의학 연구 대부분은 얼마나 다중비교를 필요로 하는지 불분명하며 분석과정이 비체계적이고 불투명하다. 사전 등록된 프로토콜과 분석 계획이 없는 대부분의 관찰연구에서는 얼마나 많은 통계적 검정이 진행되고 어떤 다양한 분석 경로를 탐색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숨겨진 다중비교, 비체계적 탐색 및 선택적 보고는 실험연구 및 무작위 시험에도 있을 수 있다. 사전에 프로토콜과 통계분석 계획을 갖고 있고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시험계획을 사전 등록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긴 하지만 데이터와 결과를 분석하는 방법과 정확히 어떤 결과를 제시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자가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다. 또한, 현대의 많은 임상 연구들은 보다 작은 이익이나 위험을 찾아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바이어스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증가한다.

  P값 기준을 .05에서 .005로 변경하면 과거 생물 의학 문헌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난 결과 중 약 3 분의 1이 유의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 변화는 유의성과 비유의성을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이다. 과거 관찰 연구의 대다수에 대해서는 이러한 재분류는 환영받을 일이다. 예를 들어 멘델리안 무작위 연구 결과는 P <.05에 근거한 과거 관찰 연구 결론 중에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통계적 유의성의 기준을 엄격하게 낮추더라도 귀중한 정보의 손실은 상대적으로 거의 없이 대부분 잘못된 결과들을 제거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작위 시험의 경우, 실재하는 효과가 0.005에서 0.05 사이의 P값으로 나타나는 비율이 더 높을 것이며, 아마도 몇몇 분야에서는 대다수 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 결과는 치료 효과가 추가 조치를 필요로 할만큼 충분히 크지는 않다. 따라서 유의 수준을 강화하는 것이 비록 일부 참이고 유용한 결과들을 유의성의 영역에서 제거하게 되겠지만 전반적으로 해보다는 이익이 더 클 것이다. P값을 낮추는 것과 무관하게 치료효과의 크기와 불확실성(신뢰구간으로 표현되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여전히 아주 중요한 일이다.

  통계적 유의성의 기준을 낮추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하지만 기준을 낮추는 것은 통계적유의성의 홍수에 빠져 익사하는 것을 예방하는 댐의 역할을 할 수 있고 보다 지속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할 수는 시간을 벌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해결방안은 통계적유의성의 기준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P값 자체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어떤 기준치를 계속 사용한다면 대부분의 관찰연구에 대해서는 훨씬 낮은 기준치를 사용하는 것이 선호될 것이다. 관찰연구에 대한 다수의 체계적고찰 결과를 다시 포괄적인 고찰(umbrella review)한 결과에서는 P<10-6의 기준치를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falsification end-point methods(즉 거의 모든 잘 확립된 귀무가설이 통과하기 어려운 그런 P값 기준을 사용) 역시 매우 낮은 P값을 제시하고 있다. 빅데이타의 출현과 함께 통계적유의성은 앞으로 더 의미를 갖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참이라 하더라도 너무 작아서 유용성이 없는 효과에 대해서도 일상적으로 극도로 낮은 P값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더 낮은 P값 기준을 채택하면 새로운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연구 수는 적더라도 충분한 검정력을 가진 더 크고 보다 세심하게 고안된 연구쪽으로 연구방향이 개혁될 수 있다. 그러나 부수적인 피해도 발생한다. 만일 연구자들이나 이해당사자들이 연구결과가 더 낮은 P값을 갖게 하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바이어스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질 수도 있다. 확실한 임상결과보다는 대체지표를 사용하여 작은 P값을 얻기 쉽기 때문에 연구 종말점(end points)으로 선정된 지표들의 임상적 적합성이 더 떨어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더 커진 평균회귀 현상 때문에 엄격한 P값 기준을 통과한 결과들이 제한될 것이고 새로운 발견은 예전보다 훨씬 과장된 효과크기를 갖게 될 수 있다.

  새로 제안된 p<0.005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보다 어렵더라도 지속가능한 해결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얼마나 쉽고 빠르게 채택 될 수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해결방법들이 있다. 새로운 해결방법들은 현재까지 축적된 과거의 생물 의학 문헌의 사용과 해석 또는 미래에 축적될 새로운 문헌의 설계와 전개를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연구결과가 사실로 굳어진 된 이후에는 완벽한 교정방법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문헌에 대해서는 시급히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과학자들은 통계적 추론을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하고 바이어스는 후향적이 아니라 사전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도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로 남아있을 것이다.

  데이터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만일 연구자나 연구의 이용자들이 연구방법이나 통계에 대해서 엄격한 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표준이하의 의학 통계나 이에 따른 잘못된 해석이 지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영역에서는 더 낳은 P값 기준을 채택하고, P값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적절한 경우에는 다른 유용한 추론방법(예를들면 베이시안 통계)을 채택할 것이다. 이러 변화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과거에 채택이 잘 안된 것이 비관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출발과 더 나은 실행방법을 빨리 채택하는 것은 항상 가능하다.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통계수련과정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주요 학술지와 연구지원기관으로부터의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할 것이다.

 

by 카이로스 | 2018/04/14 23:01 | 일반 | 트랙백 | 덧글(1)

최대집 의협회장 당선과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구속

  최근 의료계에서는 경악할만한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먼저 최대집 원장이 의협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서울의대를 나온 의사가 극우 냄새가 물씬 나는 단체의 대표로 태극기 집회에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참 괴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 집단이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조심스런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에 나서서 탄핵 반대를 외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그가 의사협회장 선거에서 나온다고 해서 그냥 그러가 보다 했지 당선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약 30%의 득표율로 다른 5명의 후보자를 꽤 큰 표 차로 제치고 당선되었다. 의협회장 선거는 의협회비를 낸 회원에게만 투표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최대집 후보를 표로 지지한 의사는 전체 13만명 중 5%에 불과하지만 그가 현행 선거체계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해서 전체 의사를 대표하는 위치에 올랐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그를 지지한 의사들이 탄핵을 반대하는 그의 정치적 노선을 보고 지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케어를 두고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의사들 입장에서 자신들을 대변해서 가장 잘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을 뽑았을 것이다(극좌 든 극우 든 상관없이 가장 전투력이 좋을 것 같은 사람을). 의사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더라도 윤리적 또는 전문가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내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선거 결과는 마치 의사들이 체면은 다 내다버리고 내 밥그릇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대국민 선언을 한 것처럼 보인다.

  이대목동병원 사건의 의료진을 과실치사로 구속한 것도 정말 경악할 일이다. 의료인과 관련된 형사처벌로는 20년 전 퇴원하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를 보호자의 요청으로 퇴원시킨 의료진에게 살인죄의 방조범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보라매병원 사건(그래도 그때는 의료진을 구속시키지는 않았는데) 이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까 싶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신생아들의 사망원인은 지질영양 주사제를 통한 시트로박터 균 감염이라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한 바이알을 한명에게 투여해야 하는데 신생아들은 작은 용량만 투여하기 때문에 여러 개로 분주한 후에 한 참 있다가 투여하는 과정에서 세균 오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생아들에게 영양제제를 분주해서 투여하는 것은 이대목동병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분주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만도 없는 것이 영양제를 일부만 투여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분주를 해서 바로 투여를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주말이 끼다보니또 당시 날씨가 추워서 병원에서 난방을 세게 하다보니 균이 번식할 시간과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마치 스위치치즈모델처럼 공교롭게도 모든 구멍이 하나로 맞추어지면서 사건이 터지 것인데 우연히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의료진에게만 모든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가 많다. 개원 후 20여년 이상 지속된 관행을 개선하지 않은 것까지 과실이라고 해서 형사처벌을 한다면 앞으로 모든 의료사고에서 의료인들은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법당국에서 의료의 특수성은 고려하지 않고 신생아가 4명이나 집단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을 한 것 같다. 대형화재 사건이 나면 건물주를 구속하는 것처럼 말이다(무슨 과실인가는 있을테니).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수사 한 경찰이나 영장을 청구한 검찰이나 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극우인사가 의협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는 않았겠지만 내게는 두 사건이 연관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체면 안 차리고 내 밥그릇 챙기겠다는 의사들의 선언에 대해 의사집단을 특별히 대우하지는 않겠다고 사회가 응답한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의대목동병원 의료진 형사처벌에 항의하는 의사들의 맨 앞에는 극우 의협회장이 서 있을텐데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지 대략난감한 일이다

by 카이로스 | 2018/04/08 18:42 | 일반 | 트랙백 | 덧글(8)

개와 함께한 동아마라톤

  내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것은 순전히 학문적 호기심이었다. 우연히 장거리 달리기가 인간 진화의 원동력이었다는 네이처 논문을 읽었는데 장거리 달리기 덕분에 오늘날의 호모사피엔스가 탄생했다면 역으로 호모 사피엔스라면 누구나(나를 포함하여) 장거리 달리기, 즉 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감격스러웠던 첫 완주를 통해 달리기 진화가설을 몸소 확인 한 후에도 몇 차례 완주를 더 했다. 사실 마라톤 풀코스는 몸에 상당한 무리를 주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권할 만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풀코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은 그나마 그게 걸려 있어야 연습 삼아 달리기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 동아마라톤도 그런 목적으로 몇 달 전에 신청을 해 놓았는데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는 2주전에 인터벌 훈련을 하다가 그만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훈련은 고사하고 일주일을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래서 완주는 깨끗이 포기하고 그냥 연습 삼아 참가하기로 하였다. 광화문에 모여 서울시내 주요도로를 달리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 통쾌하기 때문이다.(내빈으로 참석한 박원순 시장은 인사말에서 자신도 마라톤을 시작해서 이미 10킬로를 완주했고 내년에는 몸을 만들어 풀코스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올해 62세인 박시장이 신체적으로는 완주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연습할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완주한다면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 만큼 큰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잠정적으로는 4대문 안에만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광화문에서 시작해서 을지로와 청계천을 한바퀴 돌고 종로를 거쳐 동대문까지 가면 얼추 하프마라톤에 해당하는 20킬로쯤 된다. 그런데 어차피 중도에 포기하기는 것이 10 킬로가 됐던 20킬로가 됐던 아무 상관이 없는 지라 심드렁하게 출발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군산에서 온 주자와 함께 뛰고 있는 개를 만났다. 달리기 할 때 개들이 짖으면서 쫓아오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마라톤 경기를 뛰는 개를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며 따라 뛰었다.작은 푸들이 뛰는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신기해한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거의)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을 본 것은 난생 처음이다.

  개는 주인과 함께 6분주(한 시간에 10킬로를 가는 속도) 정도로 일정하게 뛰었다(엄밀히 말하면 달린(galloping) 것은 아니고 속보로 걸었다(trotting)). 연습을 안한 나로서는 약간 빠른 속도였지만 개만도 못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조를 맞췄다. 그리고 이 개가 완주를 할지가 너무 궁금해서 꼭 확인을 하고 싶었다(그러다가 계획에도 없는 완주를 하게 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하면서)

  사실 개는 말과 같이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네발동물이지만 개가 마라톤을 하는 것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는 이렇게 장거리를 힘들게 달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개는 주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린다. 물론 가끔 계속 달릴거냐는 표정으로주인의 얼굴을 돌아보긴 했지만 말이다.

  청계천의 반환점을 돌면서 내 몸에는 힘든 사인이 오기 시작하지만 개는 여전히 잘 달린다. 그런데 14킬로 지점에서 갑자기 주인이 경기를 포기해버렸다. 무슨 이상 신호를 느꼈는지 아니면 훈련이 거기 까지만 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페이스메이커()가 사라지니 내 페이스도 갑자기 떨어져버리기 시작했다. 걷다 뛰다 하면서 원래 목표한 동대문을 지나 신설동 쯤에서 회송버스를 타면서 나의 동아마라톤을 끝냈다. 처음으로 중도 포기한 마라톤이었지만 그나마 이름 모르는 개와 함께 해서 뜻 깊었던 마라톤이 되었다.

((회송버스는 잠심운동장 앞에 내려준다. 메달과 기념품도 받고 맡긴 짐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주자들의 뛰는 마지막 코스를 거치게 되는데 잠심 스타디움 트랙에 다달으니 나도 모르게 다시 뛰기 시작했다. 뛴 김에 피니쉬 라인까지 통과할 까 하다가 완주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중간에 멈추고 옆길로 빠졌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가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후기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미국에서는 하프마라톤 대회에 갑자기 개가 나타나 전체 코스를 1시간 32분에 완주해서 7등을 하고  메달을 받았다는 뉴스도 있다. 이 정도라면 달리기에서 '개 만한 인간'이 되기 슆지 않겠다.


by 카이로스 | 2018/03/19 23:41 | 마라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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